산업 산업일반

벤처업계 "청년창업사관학교 체질 확 바꿔라"

■ 부실 운영 청년창업학교 이렇게 고쳐라<br>시장 창업 수요 등 고려 학생수 탄력적으로 뽑고<br>심사위원·전담교수진도 경험 풍부한 인물로 교체<br>효율적 인센티브제 도입… 사후관리 강화도 필요

지난 2월29일 중소기업진흥공단 안산연수원에서 열린 청년창업사관학교 제1기 졸업식에서 이명박(둘째줄 가운데) 대통령, 송종호(앞줄 오른쪽) 중소기업청장, 박철규(〃왼쪽) 중진공 이사장이 졸업생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난 6일 청년창업사관학교 1기 졸업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마쳤다. 사업현장 사진을 찍고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등 관련 서류도 받아냈다. 중소기업청은 이를 토대로 재조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실태조사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현장 조사를 받은 한 1기 졸업생은 "법인은 다들 유지하고 있어 조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몰래 취업했으면 계약직일 가능성이 높은데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같은 것을 받아서 알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창업사관학교의 부실운영과 관련해 대다수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숨바꼭질식' 색출작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잘못된 관리시스템부터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시장 수요를 고려한 탄력적인 인원 조정 ▦심사위원ㆍ전담교수 자질 강화 ▦효율적인 인센티브 도입 ▦멘토서비스 개선 ▦사후관리 강화 등을 사관학교 사정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청년창업사관학교가 진입장벽을 크게 높여 선발인원 자체를 압축ㆍ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매년 240명씩 뽑는 선발인원 규모가 실제 시장에서 인식하는 준비된 창업자 수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창업공급층이 얇다는 측면을 무시하고 제조업 육성이라는 목표 하나로 사람만 많이 받다 보니 지원자의 자질은 물론 관리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기청에 따르면 사관학교 규모는 안산 연수원 수용가능 인원을 감안해 산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시장의 창업공급층 수요에 대한 면밀한 고민 없이 공급자 입장만 생각하고 결정한 셈이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는 "시중에서는 엔젤투자자들의 투자자금도 넘쳐나는데 준비된 창업자가 너무 없어 투자를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 1기 졸업생은 "기술은 있지만 누가 봐도 사업가 체질이 아닌 연구원 타입의 사람들도 많아 인원을 더 솎아내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옥석 가리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심사위원과 전담교수부터 벤처에서 입지를 다진 사람들로 대폭 교체해야 한다는 비판도 높다. 현재 심사위원과 전담교수 대부분은 벤처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선발 과정만 제대로 해도 지금보다 크게 나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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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레인디 대표는 "신청서 내용도 고지식하기 그지 없는데다 주변의 검증 안 된 사람들도 사관학교에 지원하길래 깜짝 놀랐다"며 "사업가는 사업가가 평가해야 하는데 섭외가 어렵다는 핑계로 지금처럼 심사위원과 전담교수를 운영하면 사관학교는 있으나마나"라고 진단했다. 한 1기 졸업생은 "전담교수들의 관련 지식이 부족해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고 고백했다.

예비창업자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체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나왔다.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초기자금을 지원해놓고 퇴출 규모만 조절해 통제하는 것은 전형적인 '공무원 방식'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사관학교의 인센티브 제도는 단순하게 우수졸업자 약 15명에게 이듬해 1억원 정도를 더 주는 게 고작이다. 민간의 효율적인 운용 방식을 꼭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1기 졸업생은 "모두에게 비슷하게 주는 초기자금을 줄여서라도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더 얹어주는 제도가 간절하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사관학교가 민간 창업 육성 사업가들의 조언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멘토서비스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내외 민간 창업 육성 시스템의 경우 한번 뽑은 창업자는 수년간의 벤처 경험으로 무장한 멘토가 최대 10명씩 달라붙어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쏟는다.

반면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전담교수 1인당 학생 수가 10~15명에 이른다는 것을 자랑 삼아 홍보하고 있다. 인원 수부터 일단 채운 뒤 개별 교육생에 대해 떨어지는 신뢰를 자금사용 등에 대한 강한 통제로만 관리하고 있는 꼴이다. 또 벤처 선배들을 멘토라는 이름으로 1대1로 소개해주고는 있지만 형식적이다.

사후관리와 관련해 1년간 폐업금지 조항을 걸어놓은 뒤 뒷짐만 지기보다 모니터링 주기를 더 짧게 가져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고벤처엔젤클럽의 한 투자자는 "창업지원은 규모보다 관리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며 "규제만을 활용한 관리 방식은 성공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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