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이 지난달 말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우리 소설이 베스트셀러 정점에 오른 건 지난해 9월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 8개월 만이다. 출간 한달반 만에 10만부를 돌파하는 기세를 올린 남한산성이 우리 소설의 힘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서점가에서 한국 소설은 여전히 외국 소설의 등쌀에 밀려 독자들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국 소설의 위상은 최근 일본 소설의 위세에 비하면 더욱 초라해 보인다. 5월 마지막주 소설 분야 판매순위 1~10위 안에는 오쿠다 히데오의 ‘면장 선거’,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다 노리코의 ‘눈물이 주룩주룩’ 등 일본 소설이 3개나 차지하고 있다. 한국 소설은 남한산성과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등 두권이 그나마 체면을 지키고 있다.
도대체 일본 소설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본 출판사들의 마케팅 힘을 첫손으로 꼽고 있다. 일본 출판사들은 소설 기획에서부터 아이디어 제공, 마케팅 활동 등 모든 과정에서 작가와 밀접한 결속을 보이며 독자에게 읽히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다양한 문학상을 만들어 능력 있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문학상 수상 결과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뿐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와 연계전략을 펼치며 소설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값싼 문고판 소설을 내놓아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젊은 층을 공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양한 독자를 염두에 둔 장르 소설도 소설 애독자 층을 넓히는 데 한몫하고 있다. 추리ㆍ판타지ㆍ공포 소설 등 우리 출판시장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각종 장르 소설이 일본 서점에는 넘친다.
일본 출판사들의 이 같은 노력을 보면 빈약한 작가 층과 경박한 독자 취향을 탓하는 우리 출판사의 푸념은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양한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일본 출판사의 마케팅전략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한국 소설의 중흥은 그다지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