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딥 임팩트가 남긴 것

김호일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연구부장>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매력적인 발명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들이 나올까. 사람에 따라 무수히 많은 기발한 생각들이 나오겠지만 필자는 망원경이라고 답하고 싶다. 어렸을 적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앞집을 훔쳐보던 것도 망원경이었고 좀더 커서 멋진 풍경을 담았던 사진기도 망원경을 달고 있었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토성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도 망원경 덕분이었다. 인류의 발전은 호기심에 그 근간을 두고 있고 그 호기심의 근간은 나 자신이 누구이고, 생명은 또한 무엇이며,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주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있다고 한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우주를 호기심을 채워주는 망원경으로 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우주 관측으로 인류에 공헌 얼마 전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태양 주위를 평화롭게 떠도는 작은 혜성에 엄청난 테러가 발생했다. 작전명 ‘딥 임팩트’가 그것.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딥 임팩트호라는 인공위성을 실은 거대한 로켓이 발사된 것이 지난 1월12일. 이후 173일 동안 무려 4억3,000만㎞를 날아간 딥 임팩트호가 ‘템펠 1’이라는 혜성에 접근한 것이 7월3일. 이날 딥 임팩트호는 템펠 1 혜성을 향해 370㎏의 구리덩어리를 발사했고 자동항법장치를 탑재하고 있는 이 충돌체는 시속 3만7,000㎞로 달려가 하루 뒤인 7월4일에 템펠 1에 정확히 명중했다. 우리는 이 모습을 500㎞ 밖에서 추적하고 있던 딥 임팩트호의 망원경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시각은 우리나라에서는 한낮. 따라서 국내에 설치돼 있는 망원경으로는 그 장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한국천문연구원은 미국 애리조나주의 레몬산 정상에 설치해 원격으로 운영 중인 직경 1m의 광학망원경이 있었다. 이 망원경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을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충돌 직후 혜성에서 분산된 먼지와 파편 등으로 불과 30분 만에 5배 이상 밝아지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었다. 우리가 레몬산 망원경을 통해 얻은 관측자료는 혜성의 밀도와 중력, 구성물질 등을 밝히는 데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 또 그 결과는 곧 태양계 형성의 비밀을 밝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대략 50억년 전 태양과 함께 행성들과 혜성들이 태어났지만 이후 핵융합, 기상 현상, 풍화 작용 등에 의해 태양계 형성 당시의 물질들은 많은 변화를 겪은 반면 길이 14㎞, 폭 4㎞ 정도로 작은 템펠 1과 같은 혜성들은 아직도 태고의 물질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망원경은 또한 인류의 보금자리인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태양계에, 그리고 지구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소행성과 혜성들이 있는데 이들 중에는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화제가 됐던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라는 영화가 이런 상황을 영화화한 것이다. 약 6,800만년 전 10㎞ 정도의 크기를 가진 소행성과 지구와의 충돌이 공룡을 한순간에 멸종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설명은 이미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지구의 주인인 인류가 멸망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번 딥 임팩트 실험의 또 다른 목적이 바로 지구로 접근하는 천체를 찾아냈을 경우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딥 임팩트를 관측하는 정도라면 우리가 가진 망원경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빅뱅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하가 생성되고 별이 태어나던 당시의 까마득히 먼 우주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망원경은 너무 작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어 더 오래전에 생긴 은하는 우리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고 따라서 더 어두워 이를 보기 위해서는 더 큰 망원경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력 걸맞은 망원경 갖춰야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스페인과 같은 나라들도 직경 10m의 망원경을 가지고 있고 선진국들은 30m 이상의 초대형 망원경을 계획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가 가진 것은 고작 1.8m가 최대이다. 우리나라가 인류를 위해 공헌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인간의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일만큼 고급인 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호기심 많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젊은 천문학도들에게 우리의 경제력에 어울리는 크기의 망원경을 선물한다면 그들은 우주의 탄생과 진화라는 커다란 질문에 답해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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