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테러 1년, 부시대통령에게

느닷없이 미국 대통령께 글을 쓰는 게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9ㆍ11 테러 1주년. 세월이 하 어수선하니 지구촌에서 제일 힘 있는 분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 한번 나눠보려는, 그저 '객쩍은' 바람이 계기라면 계기지요. '예외적 건강'이라는 주치의(主治醫)의 소견이 나온 일, 먼저 축하 드립니다. 한달 휴가는 편히 보내셨는지요. 어지러운 시절에 오래 쉰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어떻습니까. 세계 최강국 지도자라면 그 정도의 여유는 멋지게도 보입니다. 미국의 심장부에 불길이 치솟은 지 1년, 감회도 남다르시겠지요. 돌이켜보면 9ㆍ11 테러는 미국, 특히 백악관의 힘을 만천하에 확인시킨 역설적 계기도 됐습니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미국이 그 정도 지지를 받은 적도 아마 현대사를 통틀어 거의 없던 일 같습니다. 그런데요, 역사는 돌고 도는 거라던가요. 최근 들어 일이 좀 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반테러 '십자군' 미국의 걸음걸음에 친구들마저도 이제 고개를 내젓고 있음은 웬일인지요. 동맹의 결속은 깨지고 경기침체의 먹구름까지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미 대륙으로부터 몰려오고 있으니 전조(前兆)가 안 좋습니다. 국제 정세부터 보지요. '반테러전'의 안보 독트린을 앞세운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거들겠다는 나라가 거의 없는 것은 선대(先代) 걸프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예뻐서가 아니라 전쟁의 명분이 없기 때문이지요. 환경협약 탈퇴에서 출발한 미국의 대외정책 전반에 대한 거부 정서가 급기야 조건반사적 반미감정으로 세계 도처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경제도 모양새가 사납습니다. 일방주의적 미국의 통상정책이 사사건건 무역분쟁을 만들고 있어요. 특히 유럽연합과의 험악한 마찰은 전례가 드문 일이지요. 얼마 전 현 경제위기의 책임이 전임자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대통령의 초조감만을 드러낸 말로 비쳐지니 유감스럽습니다. "진보는 분열로,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 좀 심하게도 들리지만 항간의 이런 조소에는 미국을 뒤흔든 회계부정의 부패 구조 안에 보수적 친기업주의자의 큰형님 격인 대통령이 자리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지요. 공화당의 야심작, 감세정책은 어떤가요. 부유층과 기업들에 좋은 일을 시키며 경기부양보다는 재정 적자만 확대시킨다는 비난이 일고 있으니 내?內治) 쪽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판에 천하(?)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마저 기력이 어째 예전만 훨씬 못해보입니다. 통화정책의 칼날은 무뎌진 지 오래고 행정부의 재정정책에도 묘안은 안 보입니다. 클린턴 정부 시절 루빈 장관처럼 시장이 믿는 경제계의 '맹장(猛將)'을 지금 행정부 주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게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큰 불행입니다. 외교와 경제 양쪽 백악관 주변 실세들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세계 경영의 문제를 낳고 있는 게 아닐는지요. 그 정책적 불균형이 국제 질서를 혼란으로 몰고 경제에까지 큰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의 독단을 지켜보는 지구촌은 이제 피로감을 넘어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치도 인생사와 다를 바 없을 테지요. 미국의 국익만이 선(善)이 아니라 상대 나라도 배려하는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세계관이 못내 아쉬운 때입니다. 패권적 보수 헤게모니는 제국주의 시대의 유물이지 첨단의 시대, 상생(相生)의 이데올로기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큰 지도자는 난세에 돋보이는 거라던가요. 부디 모든 세계인을 껴안는 '따뜻한 가슴'의 통치로 9ㆍ11 테러를 역사발전의 대전기(大轉機)로 끌어올리길 바랍니다. 무례하고 거친 표현을 대인(大人)의 아량으로 너그러이 봐주시리라 믿습니다. 홍현종<국제부장>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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