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남·북한간의 교역물량은 크게 감소했다.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기업들의 대북투자의욕이 크게 꺾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8년은 그동안 주춤했던 남북교역이 다시 햇볕을 본 아이러니의 한해였다.
정부의 「햇볕정책」「정경분리」란 새 원칙이 경협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적잖이 걷어냈기 때문이다.
정부는 「4·30 남북경협 활성화조치」에서 대북 접촉이나 방북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북한제품의 국내 반입 때 승인을 받는 품목수를 줄였으며 대북한 투자규모도 완전히 없앴다. 가능한한 경협을 확대, 남·북한간의 냉전분위기를 해소하고 민족간의 동질감을 살려보자는 거시적인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올들어 경협에 관해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빠지면서 북한 스스로 경제를 살리지않으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북한 내부의 공감대가 형성돼 경협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현대와 통일그룹에 대한 금강산 관광사업 허용, 2,000만평규모의 대규모 서해안공단 개발 추진 등 굵직굵직한 협력사례가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크고작은 대북투자계획이 봇물터지듯 발표되면서 그동안 주춤했던 남북경협 분위기를 일거에 바꿔놓았다.
◇남북한 교역규모=정치적으로 교역환경이 크게 개선됐지만 실제적인 남북교역물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북에서 반입된 물량은 5,231만3,000달러어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억3225만1,000달러어치와 비교하면 60.7%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 북으로 들어간 물량도 지난해에비해 15.2% 줄어든 6,393만3,000달러어치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반출량 감소율이 낮은 것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북 식량지원 등을 통해 많은 물량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교역규모가 줄어든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들의 투자의욕 상실때문이다. 갑자기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기업들의 생산의욕이 꺾이면서 교역은 물론 임가공투자 등 대북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북한에서 반입되는 물품들에 대해서도 국내 기업들이 큰 부담을 갖게 됐다. 북한물품은 모두 달러화로 결제되는데 IMF사태이후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북한물품 반입을 꺼리게 됐다.
달러를 가능한 많이 보유하려는 국내 기업심리도 남북간의 실제 교역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남북경협 협력사업= 그동안 정부가 승인한 남·북한간의 협력사업은 대부분 소규모였다. 한국전력의 경수로건설 지원사업이 4,500만달러규모로 비교적 규모가 크다고는 하나 정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민간기업간의 순수 교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올해 정주영회장의 소떼방북으로 시작된 협력사업의 규모는 지금까지의 투자규모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현재 현대가 진행 중이거나 추진 중인 대형 사업을 보면 해주공단개발면적만 80만평, 사업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소요되는 투자액을 산정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현재 진행 중인 금상산 관광및 개발사업, 추진 중인 원유개발950억-400억배럴), 철근생산(연7만톤), 자동차조립(연1만-3만대), PC조립(연7먼\만대), 카오디오조립 (연20만대) 등의 사업들의 면면은 이전까지 보지못했던 대형 사업들이다.
현대의 움직임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대깅업들의 북한 진출을 촉발했다.
남북 경협사업에 적극성을 띠었던 대우·LG그룹의 경우 선발 현대그룹의 움직임에 발맞춰 그동안 탐색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각종 경협사업을 구체화했다.
업계 최초로 북한 남포에서 셔츠·가방·재킷등을 생산·판매하는 「민족산업총회사」를 운영하며 그동안 경협사업을 주도해왔던 대우는 이미 통일부로부터 설립승인을 받은 가전공장 설립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대우는 또 지난 연말 김우중(金宇中) 회장 방북때 논의됐던 나진·선봉지역내 한국 기업 전용공단 조성과 합작호텔 건립도 구체화할 예정이다.
컬러TV임가공 사업을 벌이고 있는 LG그룹도 기존 단순조립생산에서 한차원 수준을 높여 북한에 컬러TV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합영공장 설립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LG는 또 지난해 정부로부터 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은 자전거공장과 가리비양식사업에 이어 장기적으로는 통신·에너지·자원개발분야까지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물밑작업을 벌였던 나진·선봉 통신센터 운영사업에 다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그룹 차원에서 운용하고 있는 북한경협창구인 특수지역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계열사들의 각종 경협 사업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들 역시 현대그룹을 중심으로 한 남북 경협 확산 추세에 빠른 속도로 보조를 맞춰나갈 움직임이다.
현대의 대북사업 투자규모가 워낙 크고 범위가 넓어 당초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그동안 소규모로 분산 진행된 경협사업이 대규모 조직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금강산 샘물」 개발을 위한 경협사업승인을 받은 태창은 현대가 북한과 광천수 개발을 합의함에 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사업을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부품 업체들도 상당히 고무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의 북한 자동차조립공장 설립은 그동안 불황의 몸살을 앓아왔던 자동차부품업계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현대와 손잡고 북한에 진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코오롱(섬유및 섬유제품 가공·생산) 신일피혁(피혁가공 및 의류제조판매) 고합물산(의류·봉제·직물 제조판매) 신원(의류·봉제사업) 역시 내년부터 그동안 보류해놓았던 각종 대북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 밖에 신발, 의류, 봉제, 주방용품, 플라스틱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도 현대가 추진하는 서해안공단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북한에 적극 진출한다는 계획아래 사업타당성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소업계 관계자는 『IMF이후 남아돌고 있는 중소기업의 노동집약적 사양산업 설비를 북한으로 이전시키면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의 서해안공단 조성사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관심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김형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