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막강한 정치력을 갖고 있는 민족으로는 단연 유대인이 꼽힌다. 이 때문에 워싱턴이 각종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유대인 음모론`은 단골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미국 정가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의 힘을 매번 음모와 연결시키는 것도 설득력 강한 논리는 아니다. 미국 내 친유대 단체인 `에이팩(AIPAC)`은 우리가 워싱턴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선례다. 포천지가 선정하는 워싱턴 파워로비 그룹에서 항상 수위를 차지하는 에이팩은 이스라엘 민간단체들을 활용해 친이스라엘 정치인에 자금을 지원하고, 반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이스라엘 방문을 주선하는 등의 활동을 펴고 있다. 특히 이들의 지원 범위는 단순히 유대계 정치인에 머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돼줬던 정치인이 출마할 경우 같은 지역에서 출마하는 유대계 정치인의 출마를 만류할 정도로 신의를 보여주며 미국 정치인들과 상호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유대계를 `불구 대천`의 적으로 간주해온 미국 내 아랍계가 최근 에이팩을 모델 삼아 정치에 무관심했던 아랍계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를 촉구하고, 워싱턴 관계자들과의 모임을 주선하는 등 정치활동에 적극 나선 것은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미국 내 아랍계는 300만명에 달하지만 그동안 유대인들처럼 정치적으로 세력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사실. 그러나 9ㆍ11테러 이후 입지가 더욱 좁아지면서 정치참여 확대만큼 미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미국 내 한국의 정치세력화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미국 내 한인들은 근면함을 바탕으로 경제적 기반을 잡았고 부모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좋은 학벌에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들은 한인 공동체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지적을 미국 주류사회에서 받는 등 정치적 영향력은 아직 미약한 편이다. 미국 내 한인 공동체를 활용해 워싱턴에서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을 키우려는 한국 정치권의 전략도 변변한 게 없다.
한국 정치권에서 친미ㆍ반미론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호오(好惡)가 어떻든 중요한 것은 한국을 둘러싼 역학관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내 한국의 이익을 대변해줄 목소리를 높이는 방편으로서 한국은 이스라엘의 에이팩이나 최근 아랍권의 활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원정 기자 <국제부> ab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