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국, 잠에서 깨어나는가

서방 투자자들은 최근 상대적으로 투자 비중이 낮았던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해외 투자자금들이 일본 도쿄증시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고수익을 좇아 서방국가로 나갔던 아시아 투자자금들도 조만간 생각을 바꿔 자국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제비 한 두 마리가 날아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최근 아시아 시장의 회복은 과장됐거나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을 마무리 짓고 소비심리와 기업인들의 투자심리를 회복시켜야 하는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타이의 많은 은행들이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 있고 한국의 개혁작업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훗날 경제사학자들이 99년 봄을 아시아 경제가 90년대의 장기 불황에서 탈출한 전환점으로 회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1일은 경제적인 면에서 중요한 날이다. 이 날은 많은 나라들이 지난 회계연도를 마감하고 새로운 회계연도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은행·보험회사와 일반 기업들은 보다 양호한 재무제표를 제시하길 원할 것이다. 이같은 속성을 잘 알고 있는 펀드 매니저들은 재무제표가 공표되기 전날 인기 주식을 매입해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기업들끼리 주식을 상호 보유하는 관행이 있는 일본의 경우 4월1일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최근 일본 주가가 급등한 것은 이처럼 결산을 앞두고 상호 보유한 주식의 주가를 끌어올려 결산 실적을 좋게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전문가들은 아시아 시장이 4월에도 강세를 보일 경우 이를 고무적인 징표로 해석할 것이다. 심리학이 경제학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요인은 경제가 호황일 때나 불황일 때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난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 미국 자본주의를 구해냈을 때 월가의 주가상승이 성공에 한 몫을 했다. 주가상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루스벨트의 대규모 재정적자정책의 잠재력을 증폭시켰다. 독재자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준비를 위해 독일을 재무장시켰을 때도 이와 비슷한 시나리오가 나타났다. 한국·타이 등 아시아 국가들이 마침내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낙관론자들의 전망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는 어떤 징조들이 나타나야 할 것인가. 이들 지역국가들의 통화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이 이같은 징조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물론 달러화에 대한 자국통화 가치의 상승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무역흑자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통화가치의 강세는 새로운 투자자금들이 해외로부터 국내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두번째 징조는 장기채권 수익률이 다시 상승하는 것이다. 당분간 중앙은행들은 채권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장기채권을 사들여야하고 일반 대출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이자비용을 충분히 낮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히 일본의 경우 유동성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아시아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브레이크 페달에 조심스럽게 발을 올려 놓아야 할 시점은 이들 국가가 연간 4%의 경제성장률을 회복하고도 2년이 더 지나야 할 것이다. 세번째 희망적인 사인은 한국과 타이의 최근 경기회복세가 상당한 강도로 지속되는 것이다. IMF의 권고하에 이들 두 나라는 경제개혁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들 국가의 많은 전문가들은 IMF가 뒤늦게나마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준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 심지어 스위스의 한 전문가는 『일본이 위기탈출을 위해 IMF에 의존하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이다. IMF의 지원을 받았으면 장기적으로 일본에 도움이 되는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대신해 멕시코·타이·한국의 성공적인 경제회복이 가르쳐 주는 교훈 한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단기적인 고통은 종종 장기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불가피한 비용이다. 한국과 타이 국민들은 희생을 받아들였다. 반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자본통제에 의존하며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일시적인 고통은 줄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더 심한 고통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규제와 정부의 감독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이는 자칫 자유방임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방임의 무정부상태는 비정상적인 경기변동과 극단적인 불평등을 초래했다. 그러나 잘못된 규제는 시장경쟁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이것이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