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 리포트] 크루그먼-월스트리트 저널 '논쟁'

[월가 리포트] 크루그먼-월스트리트 저널 '논쟁'요즘 뉴욕에선 폴 크루그먼 교수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싸움이 화제다. 미국 MIT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뿐 아니라 한국 등 아시아에서도 매우 유명한 경제학자다. 90년대 후반 한국 등 아시아국가들의 고속성장이 생산요소의 양적인 투입증가에 힘입은 것일뿐 생산성 향상이라는 질적인 상승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렵다고 갈파한 장본인이다. 2년마다 한번씩 뛰어난 업적을 남긴 40세 미만의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젊은 노벨경제학상」이라고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메달을 91년에 받은 크루그먼 교수는 깊은 학문적 지식뿐 아니라 복잡한 수식없이 평이한 문체로 어려운 경제현상을 잘 설명하는 대중적인 글솜씨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주 2회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크루그먼 교수가 다음 학기부터 프린스턴대학으로 옮길지 모른다는 얘기가 경제계의 화제로 등장할 정도다. 크루그먼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과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은 정치적 논쟁에 가세하면서부터다. 문제의 시발은 지난 5월17일자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크루그먼 교수의 정기칼럼. 「불행한 결과?」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사회보장제도 공약을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을 지지한다. 크루그먼 교수도 고어 부통령을 지지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부시 주지사가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고 깔아뭉갰다. 부시 주지사는 정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기금을 채권에만 투자함으로써 형편없는 수익률을 내고 있어 납세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근로자 개개인이 주식에 투자하는 부분을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커버해주는 사유화정책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주식수익률이 채권수익률보다 높을 뿐 아니라 주식의 위험부담이라는게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에 대해 주식투자의 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주식투자의 위험부담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때문이며 주식투자가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깨달아 주식투자에 나서게 되면서 리스크 프리미엄이 없어져 주식투자의 수익률이 낮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부시의 공약대로라면 근로자들의 주식투자가 늘어나면서 주식수익률이 낮아지게 되고 주식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전제로 한 부시의 공약은 실효가 없게 된다는게 크루그먼의 비판이다. 이에 대한 반박은 뜻밖에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나왔다. 저널은 6월13일자 「부두(VOODOO) 저널리즘」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크루그먼교수의 주장이 일관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주가수익률이 높은 것은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며 90년대 이후 주식투자의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알게 되면서 주식투자가 늘게 된다는게 지난해 제임스 글래스먼과 케빈 해셋이 「다우 36,000」이란 책을 펴내면서 내세운 논리다. 크루그먼 교수는 99년6월 「슬레이트」란 온라인 잡지와 99년12월 포천지에서 글래스먼-해셋 논리를 「논란의 가치조차 없는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조롱했다. 그랬던 크루그먼이 이번엔 부시 주지사의 공약을 비판하기 위해 글래스먼-해셋 논리를 인용하고 있다는게 저널의 비난이다. 크루그먼은 7월9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파인애플 피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다른 피자를 먹는다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주식 맹신론자(MAD-BULL)」를 비난한 것일뿐 주식의 「리스크 프리미엄」에 대한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변명이다. 경제학자가 현실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데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고, 전통적으로 공화당편인 월스트리트저널과 민주당편인 뉴욕타임스의 대립구도에서 불거진 문제라고도 볼 수 있을 것같다. 크루그먼과 저널의 싸움이 얼마나 확대될지 모르겠지만 크루그먼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글을 쓰는 일은 앞으로 평생 없을 것같다. /뉴욕 = 이세정특파원 BOBLEE@SED.CO.KR입력시간 2000/07/12 17:42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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