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기업 자율성 해치는 상법개정안


최근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학계나 기업계의 찬반 논란이 뜨겁다. 법안의 주요내용은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모회사 주주에 의한 다중대표소송제의 도입, 감사위원회 설치회사의 집행임원제 도입 의무화,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선임, 일정규모 이상 상장회사의 전자투표제 시행 의무화, 상장회사의 이사선임시 집중투표제의 강제시행 등이다. 이번 법안은 주로 대규모회사에 대한 기업지배구조의 규제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입법이 기업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투명성을 관철할 수 있을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중대표소송 등 상법취지에 어긋나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발기인ㆍ이사ㆍ집행임원 등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대표소송 제소권을 모회사의 주주에게도 자회사의 주주와 동일하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자회사 주식의 100%를 소유하는 완전모회사가 대표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경우에 완전모회사 주주의 간접적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로 그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법안은 모든 모회사의 주주에게 대표소송 제소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확대하고 있는데, 이는 주주평등원칙에 반한다. 예컨대 모ㆍ자회사의 각 발행주식총수가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에 자회사의 주식 51%를 소유한 모회사의 주식 1주의 자회사에 대한 실질적 지분은 자회사의 주식 1주의 51%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자회사의 주주와 동일한 지주(持株)요건과 절차에 따라 직접 자회사에 대한 대표소송 제소권을 인정하는 법안내용은 자회사의 주주와 비교해 심히 불공평하다.

감사위원회 설치회사의 집행임원제 도입 의무화는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선임제도 및 이사선임시 집중투표제의 강제와 더불어 대규모 회사의 지배구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인 대규모회사는 감사위원회의 설치가 강제되고 있으므로 법안에 따르면 대규모회사는 집행임원제의 도입도 강요되는 셈이다.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선임 제도는 발행주식총수의 3% 초과소유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그 이사선임 단계에서부터 제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이사 선임시의 집중투표제까지 가세한다면 대규모회사는 소수주주에 의해 일부 선임된 이사나 감사위원회 위원인 이사가 참여하는 독립성이 강화된 이사회가 업무집행을 감독하고 집행임원이 회사업무를 집행하는 지배구조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규모회사가 그렇게 예상대로 움직여줄 것인지는 의문이다.


경영 효율성 고민없는 개정은 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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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임원제 도입으로 이사회 아래에 감사위원회의 설치를 의무화함으로써 이사회의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법안의 내용처럼 대규모회사에 획일적으로 감사위원회의 설치와 집행임원제를 강제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감사위원회 및 집행임원 제도를 택할 것인지, 기존의 감사 및 이사 제도를 택할 것인지는 회사 여건에 따른 회사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함으로써 기업경영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유지하는 길이다.

최근 정부의 경제민주화 입법노력은 인정하지만 기업의 유지ㆍ강화를 이념으로 하는 상법에까지 기업의 효율성이나 입법적 합리성에 관한 별다른 고민이 없이 단기간 각종 규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 사기업의 지배구조에 관한 제도개선은 기업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 자유시장의 경제원리에 부합하고 제도시행의 실효성도 확보할 수 있다.

회사규모는 거대해지고 있으나 의사결정에는 전문경영인의 경영판단보다 지배주주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배임ㆍ횡령 등 각종 기업범죄와 편법상속, 부당내부거래 등 사건이 빈발하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함이 입법배경으로 보인다.

대규모회사도 일반 주식회사처럼 감사위원회 대신 감사를 두고 이사에 의한 직접적 업무집행을 원할 경우에 이를 금지시킬 합리적 이유가 있겠는가. 원래 감사위원회에 의한 감사제도는 그 지위의 독립성은 다소 후퇴하더라도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여하는 감사위원들이 감사를 맡게 되므로 감사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집중투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사의 임기시차제를 시행하고 감사위원회 위원의 경영간섭을 회피하기 위해 이사회를 지극히 형식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업무에 관여하는 감사위원회 위원에 의한 실효적 감사라는 감사위원회 제도의 취지는 살리지 못하고 기관운영의 비용만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법규자율준수 프로그램의 개발, 상법 벌칙규정의 정비, 기업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지배주주의 소유구조 개선을 위한 특별법의 정비 등이 합리적인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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