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28일] 감자


1586년 7월28일, 영국 폴리머스항. 신대륙에서 막 돌아온 프랜시스 드레이크 선단이 특별한 화물을 풀었다. ‘북미산 감자’였다. 감자를 들여온 사람은 토머스 해리엇(Thomas Harriot). 부등호(>, <)를 처음으로 문서에 남긴 수학자이며 태양의 흑점을 연구하던 천문학자인 그가 왜 북미 땅을 오갔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신인 월터 롤리 경의 수학 개인교사를 맡았던 인연 때문이다. 롤리 경이 개척하려던 북미 로노크섬 식민지의 생태계와 환경을 조사하던 해리엇 일행은 물자 부족과 기아에 시달리던 중 드레이크의 함대를 만난 덕에 무사히 생환했다. 해리엇의 채집물 중에는 원주인들이 ‘오페나우크(openauk)’라고 부르던 감자뿐 아니라 ‘우포웍(uppowoc)’으로 지칭하던 담배도 있었다. 해리엇은 인디언의 담배 건조기술까지 소개해 북미 담배농업의 선구자로도 손꼽힌다. 영국에 들어온 감자는 에스파냐가 1520년 처음 소개한 페루산 감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아일랜드에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롤리 경에 의해서다. 일부 귀족들은 감자를 ‘땅 속에서 나는 악마의 음식, 천한 식품’으로 여겼지만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는 점이 부각되며 각국에서 재배 열풍이 불었다. 17세기 이후 유럽 인구 급증을 감자 덕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감자대기근(감자 뿌리가 썩는 식물전염병)이 휩쓸 무렵 아일랜드에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일년 중 10개월은 감자로 연명할 정도였다. 감자는 이제 필수식품이다. 전파된 지 3세기 남짓한 우리나라에서도 감자는 토착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전세계의 감자 생산량은 약 3억1,500만톤. 이상 기후로 생산 증가세가 주춤거리고 있지만 식량난을 극복해나갈 미래의 작물로 꼽힌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감자의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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