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허프바우 워싱턴 국제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전쟁의 조기 종결로 일단 세계 경제가 회복될 긍정적 조건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의 경우도 전쟁을 둘러싼 열강의 분열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美국제경제연구소의 게리 허프바워 박사는 미ㆍ이라크 전의 조기 종결에 따라 세계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해졌다며, 전쟁에 대한 찬반 여부로 대립을 보여온 국제사회가 갈등을 봉합하고 보다 개방적인 무역정책을 추진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전후 세계경제의 주요 이슈에 대한 허프바워 박사의 견해를 들어 봤다.
-미ㆍ이라크 전쟁이 예상 외의 단기전으로 종결됐다. 단기전은 위축된 소비심리와 투자심리를 회복시켜 마침내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유발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전투 중 사상자도 상당히 적었다. 파병 규모를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게다가 우려됐던 테러 공격도 없었고 국제유가는 하락하고 있다. 미국이 상정했던 전쟁 시나리오 중 최선의 것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긍정적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전쟁의 조기 종결로 미국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일단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일각에서 예상하듯 미국이 시리아, 이란, 혹은 북한을 대상으로 계속 무력을 동원한 다면 재정적자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도 있지 않겠나.
▲지금 언급된 지역 중 어느 곳에선가 미국이 군사행동에 나선다면 재정적자는 물론이고 여러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쟁이 시리아와 이란으로 확산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목표에 포함돼 있지 않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아직 미온적인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달러화의 가치는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데.
▲내 추측으로는 2003년 미 경제는 세계 3대 경제권 중 가장 강한 성장세를 보일 것 같다. 따라서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는 1유로, 135엔 정도의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또 미 주식시장에서도 마침내 `베어(Bear) 마켓`이 끝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장기이자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국제석유시장에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위협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OPEC의 영화가 끝난 것으로 보는지.
▲유휴 생산설비가 제한적이고 그 대부분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OPEC이 끝난 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 이른 견해다. 세계 경제가 향후 2년간 4%대의 성장을 계속한다면 OPEC이 다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때 세계적으로 반전 열풍이 불었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의견 대립도 심화됐다. 이 같은 상황 전개가 국제무역에 끼칠 영향은?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이 화해와 반목의 방향을 결정짓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가능성은 각국 지도자들이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계속 관계를 발전시켜 가자”고 합의하는 것이다. 이 경우 국제무역 뿐만 아니라 무기감축 등에서도 성과를 올릴 수 있다. 협상은 어려울 것이지만, 각국 지도자들이 이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6월 회동에서 전쟁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재현되고 각국 지도자들은 이라크의 재건 계획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 경우 국제관계에서 아무런 진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지역 단위의 경제협력 프로그램 등이 더 강조될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도하 라운드 등 다자간 무역협상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의견을 들은 바 있다. 지금으로서는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반반이라고 본다. 국제사회에 갑작스럽게 화해무드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다자간 무역협상이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이라크 문제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국제무역 등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전쟁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반응에 실망한 미국이 무역 분야에서 보호주의의 입장을 강화할 가능성은? 최근 한국에서는 하이닉스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관세 부과가 국내 반미정서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미국이 보호무역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미국은 프랑스, 독일 뿐 아니라 미군을 위해 영토를 개방하지 않은 터키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하지만 무역에 관한한 미국의 현 입장이 이미 매우 강경하기 때문에 이를 더 강화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미국의 보호주의는 이미 지난해 최고점에 도달했고, 이제는 하향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본다. 지난 2001년 12월 이래 아무런 새로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내 생각으로는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는 개방정책을 보다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하이닉스에 대한 관세가 반미정서와 관련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반덤핑관세 부과 결정과정에는 정책 의도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나는 미국의 반덤핑 관세 계산 방식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결정 자체는 단순히 계산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사스(SARS) 공포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스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일회성에 그칠 것인가.
▲지금까지 사스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에이즈 등 다른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에 비해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전염병이 늙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감염을 우려한 사람들이 항공여행을 기피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항공업계, 여행업계 등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스 공포가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을 감소시킬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우 일부 비지니스의 이전으로 GDP가 다소 줄어들 수도 있지만 이 지역을 빠져나가는 비즈니스는 컨설팅이나 임시직이 대부분일 것이다. 또 많은 경우 비즈니스는 컴퓨터와 비디오폰 등을 이용해서 수행될 수 있어서 사스가 경제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허프바워는 누구
국제경제전문가로 특히 무역, 투자, 조세 부문에서의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다. 미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로 옮기기 전에는 워싱턴시의 명문 조지타운대학에서 국제금융외교학 교수와 국제법연구소 부소장을 맡은 바 있다. 미 상무부에서 국제무역투자정책담당 차관보와 국제세금담당관을 역임, 실물경제 및 정책에도 밝다. 최근 저서로는 `가격수렴의 혜택(The Benefits of Price Convergence)`이 있다.
<김대환기자<경제학박사> d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