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덕담 권하는 사회

긴 황금 연휴가 다가오면서 설을 맞는 기쁨이 예년보다 더 크다. 정부가 설날 민족 대이동을 앞두고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귀향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어 다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연휴가 긴 만큼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이동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설날에 만난 가족 친지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세배를 하면서 덕담을 나눈다. 덕담은 사전적 의미로 새해를 맞아 서로 복을 빌고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축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뼈있는 덕담에 얼굴 붉히기도 정초에 상대방에게 평소 바라던 소원을 꼭 이루라고 말해주는 우리 조상들의 주술적 의미까지 포함한다. 덕담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출발은 임금과 신하가 새해 첫날 서로 하례하는 궁중의식이었다고 한다. 예부터 내려온 덕담의 내용도 자식을 얻는 것(생자ㆍ生子), 관직에 오르는 것(득관ㆍ得官), 돈을 버는 것(치부ㆍ致富) 등이 주류를 이뤘다. 이처럼 덕담의 역사는 유구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덕담이라고 한 말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 포털 사이트가 얼마 전 직장인 1,600여명을 대상으로 설날에 듣기 싫은 덕담을 조사한 내용을 보면 "올해는 결혼해야지"가 1위(30%), "취직은 됐니"가 2위(27%)를 각각 차지했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이나 취직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 불만스러운데 어른들이 덕담이랍시고 피하고 싶은 말을 걸어오면 싫을 듯하다. 명절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오히려 얼굴을 붉히게 되는 일도 왕왕 있다. 부모님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며 자식들에게 역정을 내는가 하면 음식 장만을 하던 동서끼리 서로 감정을 건드리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생활방식이 이미 서양식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예전보다 친밀도는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명절에 대가족으로 모이면 아무렇지 않게 사생활을 침범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더욱이 평소에는 별로 대화가 없다가 명절에 모여 대화가 많아지면서 서로 배려 없이 말실수를 해 상처를 주고도 풀 기회 없이 헤어지다 보니 갈등이 쌓이게 된다는 것.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덕담이 상처를 주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독한' 말을 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TV 프로그램마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 독한 말을 뱉어내고 독한 관계를 설정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 전국을 강타한 케이블TV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는 실력 있는 아마추어 가수들의 등장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쓴소리를 내뱉은 심사위원들의 독설도 한몫했다. 슈퍼스타K2의 열풍에 뒤따라 나온 MBC의 '위대한 탄생'은 심사위원들의 독설 강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인 프로듀서 방시혁과 가수 이은미는 독설 퍼레이드로 눈길을 모으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찬반 공방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독설보단 격려 한마디 어떨까 데일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다. "마음으로부터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당신의 말을 일생 동안 마음에 품고 되풀이해 보며 마음을 위로하는 보물로 삼을 것이다. 당신이 까마득히 잊어버린 훨씬 후에도." 카네기의 말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타인과의 대화나 관계 설정에 고민하는 전세계인들에게 수십 년 동안 명언으로 자리잡고 있다. 남들과의 관계도 이럴진대 하물며 가족끼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것은 엄마의 품으로, 추억의 장소로 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을 실현하는 일이다. 누구나 고향에 가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고 싶지 독설로 상처받고 싶지 않다.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명절에 만난 가족 친지들끼리 따뜻한 말을 건네고 서로 격려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널리 퍼뜨리는 일이다. 명절 때마다 덕담을 나누며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미풍양속이 새삼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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