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예산에도 성(Gender)이 있다

심상정 <국회의원·민주노동당>

서울시 공공시설 화장실을 짓는 데 드는 총예산을 100이라고 가정해보자. 남자화장실을 짓는 데 50, 여자화장실을 짓는 데 50의 예산을 배분하는 게 평등한 것인가. 여성은 신체적 특성, 어린 아이를 동반하는 등의 이유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평균시간(3분)이 남성(1분24초)에 비해 훨씬 길다. 그렇다면 여자화장실의 변기 수는 남자화장실보다 최소한 2배가 돼야 하며 그만큼 예산 배정도 달라져야 한다. 이렇게 성인지적(性認知的) 예산이란 정부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평가해 정부의 예산체계와 편성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예산은 성별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함으로 인해 성차별이 유지되거나 개선되지 못해온 게 사실이다. 예산에 대한 성인지적 접근의 필요성이 요즘 강조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인지적 예산은 지난 80년대 중반 호주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이래 95년 북경세계여성회의에서 행동강령으로 채택됐다. 현재 영국ㆍ스웨덴ㆍ필리핀ㆍ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0여 개국에서 성인지적 정책과 예산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2년 11월 국회에서 ‘성인지적 예산편성 및 여성관련 자료제출 촉구 결의안’이 채택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정부 관리들조차 성인지적 예산을 여성 관련 예산으로 이해하는 척박한 인식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성 관련 예산은 출산휴가나 여성인적 자원개발 예산 등 여성에게 특정한 예산이 있고 보육이라든지 고용평등 예산과 같은 성 평등적 예산이 있다. 그러나 성특정적 예산과 성평등적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예산의 경우 0.5% 미만이다. 따라서 성인지적 예산이 관심을 두는 부분이 바로 예산 중 99.5%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예산 범주에 속하는 예산과 사업들이다. 국방ㆍ교통ㆍ환경ㆍ과학기술ㆍ사회복지 등 99.5%에 해당하는 예산이 성평등과 관련해 어떠한 효과를 내고 있는지 충분히 분석돼야 한다. 현재 국회에 국가제정법제정안이 제출돼 있다. 성인지적 관점의 예산편성 원칙이 명기돼야 한다. 더불어 성인지 정책의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통계인 만큼 정부 각 부처에서 성별 분리 통계 작성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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