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미통상관계의 재인식을/박태호 서울대 국제지역원교수(긴급진단)

지난 수년간 잠잠했던 한미 통상관계가 다시 심상치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국별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한국관련 불공정 무역관행을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지적한 데 이어 이번에는 자동차시장의 개방문제에 대해 미통상법 슈퍼 301조를 적용하여 한국을 우선협상관행국가로 지정하였다. 미국내 자동차업계의 불만이 거세지고 또한 클린턴대통령이 「신속처리권한(Fast­track Authority)」을 현재 의회에 신청해 놓고 있는 등 미국내 정치상황으로 인해 미행정부가 단호한 입장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도 과거와 다른 것같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이후 대외통상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다자간체제에 두고있는 한국은 슈퍼 301조에 입각한 미국의 일방적 조치는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보복관세를 매길 경우 이를 WTO로 가져간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이미 컬러 텔레비전과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규제가 부당하다는 점을 들어 미국을 WTO에 제소한 바 있다. 이렇듯 한국의 대미통상자세는 과거에 비해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최근 아시아, 동구, 남미 등 새롭게 부상하는 지역으로 수출시장을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는 한편 미국은 한국시장으로의 수출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수출시장으로서 미국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 한국의 수입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쌍무협상에서 미국의 레버리지는 상대적으로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최근 우리의 대미무역적자가 1백억달러를 상회하고 있어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은 과거와는 달리 미국의 일방적인 통상압력에 쉽게 양보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대한 이해없이 미국이 과거의 패턴대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밀어붙인다면 한미통상관계는 물론 전반적인 한미관계까지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국 또한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한다면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될 것이다. 이는 양국 모두에게 손해일 뿐 아니라 21세기를 앞두고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한미경제관계 구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제 한미 양국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솔직하고 진지한 노력을 경주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반세기 동안 쌓아 온 긴밀한 관계가 와해됨은 물론 앞으로 양국이 함께 나누고 성취할 수 있는 많은 과실을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미 양국간 협력가능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호신뢰를 더욱 더 두텁게 쌓고 상호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앞으로도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일 뿐만 아니라 한국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시험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선진국시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에 필요한 첨단기술과 자본의 주요 공급원이 미국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은 실질적인 규제완화와 경제자유화를 통해 기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압력때문이 아니라 한국 경제 스스로의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국내기업뿐 아니라 외국기업들에도 파급될 때 한국의 대외공신력은 제고될 것이며 한미 경제관계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5대 수출시장이 되었으며 농산물의 경우 3대 수출시장이라는 점,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기업의 대미 직접투자 규모가 미국기업의 대한 직접투자 규모를 능가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중국의 인구가 한국의 22배가 되는 데에 반해 미국의 대한수출이 대중 수출의 2배가 되고 있음은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한국은 미국과 산업구조 측면에서 보완적이며 이를 바탕으로한 양국기업간에 산업기술 분야에 있어서 전략적 제휴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이러한 양국간 상호 중요성의 재인식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은 앞으로의 양국간 경제관계를 「21세기 관심사와 번영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에 전개될 공동기회의 파악과 이의 극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금번 자동차문제를 풀어나감에 있어서도 단기적인 이해와 감정보다는 이와같은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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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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