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자와 분산투자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다.
'장기투자'라는 이름 하에 맹목적으로 묻어두는 투자를 했고, '분산투자'를 명목 삼아 여러 지역에 분산했지만 고위험 주식형 상품들 일색이었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대부분의 투자상품이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투자심리는 무너졌고 투자원칙도 외면됐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미국 등 일부 시장은 과거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며 크게 상승했다. 국내 증시 역시 연중 최고점을 두드리며 코스피지수가 2,050포인트 안착을 시도하고 있다. '바이코리아' 이후 최장기간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이어지며, 내년 증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사실 최근 투자환경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불안 요인과 해결책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패턴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의 전망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며 변동성이 확대됐다. 예를 들어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Tapering)'를 언급하며 불안한 시장이 형성됐지만, 결국 지난 9월에는 양적완화 유지정책이 발표됐다. 또 미국 정부의 예산안 합의실패로 인해 16일간의 정부폐쇄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 시장의 불안을 증폭 시켰으나 극적인 타결로 합의됐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위기로 인해 개별 기업의 부채가 중앙정부 또는 국가로 이전되고, 이로 인해 발생한 미국 등 선진국의 문제가 사회ㆍ정치적 이슈로 확대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결정이 경제와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부채 축소와 경제 회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시작도 못한 상태에서 당장 터진 둑을 막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근본적인 불안요인이 상존하며 정치권의 입에 단기적으로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현재 자산현황을 점검하고 투자원칙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몇 년째 손실이 발생한 펀드를 방치해 두고 있는지, 손실경험에 대한 악몽으로 2.7% 내외의 정기예금이나 현금 유동성으로만 운용하고 있는지, 장기투자도 분산투자도 믿을 수 없어 좋다고 하는 상품을 단기매매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자산배분과 포트폴리오 투자 원칙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장형과 안정형 상품의 분산 포트폴리오를 통해 수익이 나는 상품을 배척하지 말고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잃지 않는 투자를 위해 자신의 투자목표와 성향에 적합한 자산배분과 그 비중 조절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수익률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과거 고수익의 기억을 지우고 금리를 초과하는 합리적인 수익률로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특정 종목이나 투자상품의 성공으로 일희일비 할 것이 아니라 전체 투자원금의 연간 수익률인 계좌 수익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로지 수익이 발생할 특정상품만을 쫓는다면 적절한 타이밍을 맞출 수도 없을 뿐 더러 전체 계좌수익률이 나빠질 수 있다.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주식형 상품 비중을 높일 수도 있지만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채권 등 안정형 상품도 일정 부분 투자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상품의 성과가 아니라 전체 계좌수익률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투자대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난 1월2일 코스피지수가2013.74포인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주가상승률은 약 1% 내외다. 손실로 인해 방치하는 사이 가치주ㆍ배당주와 관련한 국내 펀드들은 20% 내외로 시장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실현했다. 해외에서도 개발수요와 함께 상승했던 국가나 섹터 대신 소비재 관련 섹터는 올해 30%에 육박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최근 주춤하고 있지만 하이일드를 비롯한 해외채권형 펀드도 주식에 대한 안전판 역할을 하며 투자자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안겼다.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등 파생상품도 지수형의 경우 안정적인 수익을 주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이자와 배당 등 현금유동성을 확보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인컴형펀드와 '정기예금 금리+알파'의 수익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이 있다. 세상 일이 그렇듯 관심에서 멀어지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내 옆을 지나가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미국 시장의 고공행진, 국내 코스피지수의 2,000포인트 돌파, 유럽시장의 약진 등 시장은 불안하지만 수익의 기회는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빚 많은 집에 대출한도를 늘려서 자꾸 대출해 준다고 해서 그 집이 재정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워질까. 맞보증으로 묶여있는 친구들 사이에 일어난 파산 문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집집마다 텅 빈 곳간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불안요인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또한 모두가 같은 고민이기에 역으로 고민이 아닐 수도 있다. 원칙을 지키는 투자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올 연말에는 내 투자성적을 냉정히 평가해보고, 내년 한해 전체 자산의 목표수익률과 계획을 세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