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심층진단] 전면 상향 땐 나라살림 年6조 구멍… 암초 만난 소득세 개편

■ 정부, 과표 수술 딜레마<br>세수 감소 없는 중립적 조정 사실상 불가능<br>소득공제 줄여 채우자니 근로자세부담 커져<br>8800만→1억 초과구간으로 조정 검토 속<br>비수혜 계층 반발 우려로 아예 무산 가능성도

직장인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 나무그늘 아래에서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월급쟁이들의 세금을 매기는 잣대인 소득세 과표 수술작업이 세수확보문제 때문에 제대로 논의해보기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서울경제 DB



세수감소 없이 중립적으로 소득세를 개편하겠다던 정부 방침이 암초를 만났다. 장기간 석화(石化)돼 있던 소득세 과세표준을 현실에 맞게 전면 상향 조정할 경우 매년 나라살림에 최대 6조원에 육박하는 구멍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이를 메우기 위해 소득세의 각종 공제혜택을 대폭 줄이면 자칫 계층별 실질 세부담 격차가 커져 정부가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수술 의지는 있지만 메스를 쉽게 대지 못한 채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소득세 과표구간을 전면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대신 일부 구간만 소폭 손질하는 선에 그치거나 아예 과표 조정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8일 기획재정부의 소득세 과표조정 시뮬레이션 결과를 서울경제신문이 확인해본 결과 소득세 과표 수준이 현재와 비슷했던 지난 1997년 이후 2011년까지 총 물가상승률은 64.7%이며 이를 적용해 현행 과표를 끌어올리면 연간 5조~6조원의 세수감소가 초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5조~6조원에 달하는 세수감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라며 “과표를 물가상승률의 절반 수준만 반영해도 세수가 연간 2조~3조원이나 줄어드는데 이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수감소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면 소득세 개편작업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과세당국 내에서는 세수감소 부담으로 과표를 소폭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현재 5개 구간인 과표 구간 중 상대적으로 최근 실효세 부담이 높고 구간의 범위 설정에 무리가 있는 부분 등을 중심으로 일부만 개편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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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소득세 과표구간 중 두 번째로 높은 세율(35%)을 적용 받는 구간인 ‘8,800만원 초과~3억원 이하’를 ‘1억원(혹은 1억2,0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수준으로 소폭 상향 조정하는 것 등이 검토되고 있다. 또 다른 당국자는 “‘8,800만원 초과’ 구간을 ‘1억원 초과’ 구간으로 조정해 시뮬레이션해보니 세수감소 규모가 연간 3,000억원 정도 된다”고 전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3,000억원 정도면 소득세의 여러 소득공제 중 일부를 감축해 메울 수 있는 규모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의 딜레마는 소득공제 역시 건드릴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 있다. 소득공제 항목이 대부분 소외계층 지원이나 출산장려, 근로의욕 고취, 주거안정과 같은 명분으로 마련됐기 때문. 이를 자칫 잘못 건드리면 가뜩이나 실효세 부담이 늘고 있는 중산층 및 고소득 근로자의 세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소득공제 중 기본공제나 인적공제는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허물기 어렵고 특별공제나 조세특례제한법상의 공제는 중산층 육성 등의 명목이어서 줄이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납세자 및 그 부양가족 등의 머릿수에 따르는 기본공제와 인적공제는 최근 다자녀 출산, 노부모 부양 등을 권장하는 차원에서 2009년 이후 1인당 60만~200만원 수준으로 상향 조정됐다. 특별공제 가운데서도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용 대출이자나 임대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택자금공제가 확대됐다. 조특법상 소득공제 중 신용카드 사용금액 소득공제는 주요 수혜계층이 중위소득 계층이어서 내수 활성화나 중산층 육성을 주창해온 정부가 허물기 어렵다.

당국 내에서는 과표의 미세수술이나 소득공제 축소가 자칫 비수혜계층의 반발을 살 수도 있는 만큼 차라리 올해 세제개편에서는 과표 구조조정 등을 하지 않는 방안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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