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 들으니 달콤한 사탕을 안겨주는 것인가. 기획재정부가 최근 들어 유달리 공조를 잘해온 한국은행에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줬다. 전임 총재까지만 해도 한은이 적립금을 쌓는 데 그토록 딴죽을 걸던 재정부가 올해는 실무자의 입에서 '배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대규모 적립금을 군소리 없이 수용한 것이다. 13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 2010년 회계연도 결산 결과 3조5,133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는 2009년의 2조8,655억원보다 6,478억원 증가한 것으로 이로써 한은은 3년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재정부는 한은법에 따라 지난해 순익 중 10%인 3,514억원을 법정 적립금으로 쌓도록 하고 재정부 장관의 추가 승인을 통해 농어가 목돈마련저축 장려기금 출연 등으로 1조1,619억원을 임의 적립금으로 적립하도록 승인했다. 올해 쌓은 1조5,133억원을 포함해 누적 적립금은 6조8,101억에 달한다. 주목할 대목은 이성태 전 총재 시절까지만 해도 적립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치열하게 싸웠던 두 기관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것. 물론 단순하게 적립된 규모만 따지면 지난해(1조7,655억원)보다 올해가 오히려 적다. 하지만 두 기관 사이에 적립을 놓고 오간 과정을 보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전 총재는 재임기간 재정부와 금리, 한은법 개정 문제로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임기 말인 지난해 초에는 순이익 처분을 둘러싸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조금이라도 더 내부 적립금으로 쌓으려는 한은과 법정적립금 외에는 전액 국고에 세입 조치하려는 재정부가 강하게 충돌한 것이다. 올해는 이런 분위기가 거의 사라졌다. 재정부는 재정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임에도 군소리 없이 또다시 대규모 적립금을 쌓도록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윤증현 장관이 한은에 배려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은 관계자도 "지난해처럼 충돌이 없었고 비교적 협조가 잘됐다"며 적립금에 불만이 없음을 드러냈다. 사실 두 기관이 '밀월(?)' 관계로 발전하는 조짐은 김중수 총재 취임 이후 자주 눈에 띄었다. 김 총재는 취임 직후 "한은도 큰 틀에서는 정부"라고 발언해 독립성 논란을 일으켰다. 이달 금융통화위원회 직전에는 두 사령탑이 묘한 화음을 연출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수요 측면의 물가압력도 나타나고 있다"며 금리인상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같은 날 김 총재는 "물가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양 기관의 밀월에 대해 시장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좋은 의미로 보면 공조라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은 한은이 정부의 입맛에 맞추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