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스펙 쌓기 명분 앞세운 고급 소풍… 사회적 낭비·부작용 심각

대학생 어학연수 10만명 시대<br>서울 명문대생 절반은 경험… 작년 12만명 넘어<br>6개월에 2,000만원 쓰고도 적응 못해 후유증 앓아<br>학원 수료증 위해돈주고 대리 출석 시키기도<br>기업, 채용때해외연수 경력 우대 풍토등바꿔야



명문대생 절반은 이 경험 있다는데…
대학생 어학연수 10만명 시대서울 명문대생 절반은 경험… 작년 12만명 넘어[이슈 인사이드] 스펙 쌓기 명분 앞세운 고급 소풍… 사회적 낭비·부작용 심각

나윤석기자 nagija@sed.co.kr

























6개월에 2,000만원 쓰고도 적응 못해 후유증 앓아
학원 수료증 위해돈주고 대리 출석 시키기도
기업, 채용때해외연수 경력 우대 풍토등바꿔야

"얼마나 있을 건데."

"6개월 아니면 1년. 아직 잘 모르겠어."

"근데 왜 하필 런던이야."

"그냥. 그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올라서."

(소설 '연인들-사랑의 기초' 중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로 유명한 작가 정이현이 최근 펴낸 소설의 한 대목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지극히 평범한 남녀의 보편적인 연애담을 다룬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 관계에 일기 시작한 균열을 더욱 키운 것은 '어학연수'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어학연수 1세대의 등장 이후 20년이 지났다. 학위를 따기 위한 유학이 아닌 단지 외국어 공부를 위해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해외로 떠나는 어학연수는 당시만 해도 매우 희귀한 사례였다.

대학생들의 어학연수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2004년 이후 줄곧 8만~9만명대를 오르내리던 대학생 어학연수자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을 돌파했다.

갈수록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된 대학생들은 '다 가는 어학연수, 나만 안 갈 수는 없다'고 하소연하지만 이 같은 풍토를 근본에서부터 뒤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국내 여건은 과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아진 반면 외국의 경우 어딜 가나 한국인이 포진해 있어 그들과 함께 장기간 '고급 소풍'을 즐기다 오는 사례가 허다하다.

최근에는 해외 일부 학원가에서 한국인들끼리 대리 출석을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은 소풍을 즐기면서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 기업에 제출할 학원 수료증을 위해 '알바비'를 지불하고 대리출석을 맡긴다는 것이다.

◇지난해 첫 10만명 돌파…어딜 가나 한국인=정부가 대학생 어학연수에 관한 통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당시 4만782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는 4년 만에 2배 이상 뛰어오른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지난해 12만5,119명을 기록,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2011년 기준 대학생은 206만 여명이며 보통 어학연수가 2~3학년 시기에 집중되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 학생의 10% 가량은 해외 연수를 떠난 셈이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정연주 컨설턴트는 "서울 지역 명문대생일수록 어학연수를 많이 가는 데 이들 중 고시생, 이공계열 등을 제외하면 2명 중 1명은 어학연수 경험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주·유럽 등지에 한정돼 있던 어학연수 지역도 갈수록 다양해져 작년의 경우 286명의 대학생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어학연수를 받았으며 187명은 중남미로, 178명은 중동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기간 역시 과거에는 6개월~1년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방학 때를 이용해 1~2개월 간 단기로 연수를 다녀오는 사례도 늘고 있는 추세다.

◇현지 대리출석도 횡행…사회적 낭비 심각=6개월 간 미국이나 캐나다의 주요 도시에서 공부를 할 경우 보통 1,500만~2,000만원 가량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이 같은 부담스런 비용 지출을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물론 스펙 쌓기라는 명분 과 수월하게 영어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지난해 초 한 시중은행에 입사한 김지현(29)씨는 2009년 6개월 간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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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한 달간 지냈던 홈스테이가 지긋지긋해 한국인 친구와 아파트를 구해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외국 생활이 망가졌다"고 회상했다.

한국인 마트, 한국인 식당, 한국인 커뮤니티를 전전하며 허송세월을 한 뒤 한국에 돌아와 토익 시험을 쳤지만 점수는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김씨는 "졸업을 앞두고 1년 가까이 토익에만 매달린 끝에 100점 가량을 끌어올려 겨우 입사에 성공했다"면서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주위에서 다 가는데 불안해서 아예 안 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과 커리어가 239명의 구직자를 대상으로 공동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어학연수 경험이 있다고 답한 98명(41%) 중 무려 63.3%(62명)가 한국인과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어학연수의 부작용이 과거에는 이처럼 개인적 실패로만 그쳤던 것에 반해 최근에는 윤리적 지탄을 받을 만한 일들이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밴쿠버 현지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한국에 학원 수료증은 가져가야 되는데 공부는 하기 싫으니 돈을 주고 대리출석자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고 귀띔했다.

◇풍토·인식 함께 바뀌어야=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외 한국인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쓴 비용은 44억7,000만 달러(약 5조원)에 이른다. 이 중 대학생들의 고급 소풍이 차지하는 비용은 30~35% 수준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사회적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기업들은 겉으로는 어학연수 경험 그 자체로는 아무런 플러스 요인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토익성적, 영어면접 등 눈에 드러나는 어학 실력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연주 컨설턴트는 "채용박람회 때 해외 봉사 경험 얘기 좀 이력서에 그만 쓰라는 기업 관계자는 봤어도 어학연수 얘기 쓰지 마라는 경우는 한번도 못 봤다"며 "어학연수를 갔느냐 안 갔느냐, 영국으로 갔느냐 필리핀으로 갔느냐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는 풍토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기업의 풍토가 바뀌면 무작정 연수를 떠나는 학생들도 줄어들 것"이라며 "무분별한 해외 연수로 인한 여러 부작용과 사회적 낭비를 멈출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초중고생 연수도 급속 확산 작년 초등생 15만명 다녀와 보편화 땐 사회적 문제 우려과거 일부 대학생만이 누리는 호사에서 2000년대 초반 대학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어학연수가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부 초·중·고등학생에게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초중고생의 어학연수 참가 비율은 각각 0.5%, 0.5%, 0.2%다.

이들에 대한 통계를 구축한 2007년 이후 큰 폭의 상승이나 하락 없이 0.3~0.5%대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 313만 여명의 초등학생 가운데 15만 여명의 '엄친아'들이 해외에서 단기간 외국어를 배우고 돌아오는 사치를 누린 셈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각각 9만 여명, 3만 여명이 어학연수를 경험했다.

통계청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참여율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대학생들이 그랬듯 향후 보편화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2007년부터 통계를 잡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어학연수에 지출하는 연 평균 비용이 지난해의 경우 초중고 모두 2007년에 비해 각각 1.5배, 1.6배, 1.8배 상승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어학연수를 떠나는 경로는 대학생과 크게 차이가 없지만 일부 사립학교의 경우 특정 학교에 단체로 교육을 보내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A유학원의 한 관계자는 "고급 사립학교로 알려진 공릉동의 H초등학교는 중국 광저우의 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방학 때마다 20~30명의 학생을 보내 교육을 받게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이 보편적으로 확산될 경우 어린 시절부터 학생을 외국어 광풍의 소용돌이에 밀어 넣는 또 하나의 악수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오성삼 건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단기간 해외 연수를 받는다고 갑자기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닌데 초중고생의 어학연수 보편화는 부의 고착화 현상만 강화시킬 것"이라며 "부모들이 불안 심리를 억누르고 국내의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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