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어김없이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무능'을 질타했다.특히 IMF(국제통화기금)사태 이후 첫 국감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의원들은 사회 전부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에 비해 정부나 공기업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과연 정치권이 공직사회를 이처럼 질책하고 성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국정감사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이나 피감기관들은 `정치권이야말로 질타의 대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일컬어지는 IMF체제 아래 사회 각분야가 `퇴출과 구조조정'이란 고통을 감내하고 있음에도, 유독 정치권만은 `치외법권 지역'인양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정경유착이라는 부패고리의 핵심축이자 IMF사태를 초래한 원인제공자의 하나로서 자기반성은 커녕, 소모적 정쟁속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급기야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최근 국회의원 2백99명 전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웃지못할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金大中대통령도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을 우려, `정치개혁 없이는 경제회생이 불가능하다'며 `제2의 건국' 차원에서 강도높은 정치개혁 의지를 천명했으나, 중이 제머리를 깎기 어려운 탓인지 정치권은 말만 앞세울 뿐 아직껏 호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정치의 3대축인 선거, 국회, 정당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정치권의 현주소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정치의 주무대인 국회의 모습이나 국회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정치권은 올들어 의원 세비와 활동비를 지난해의 월 8백82만8천원에서 8백71만3천원으로 불과 11만5천원을 깎는데 그쳤다. 봉급생활자들의 월급이 20-30% 삭감된데 비하면 그야말로 `시늉'만 한 격이다.
반면 金鍾泌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으로 15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이 6개월이나 지연되는 등 파행과 공전을 거듭함에 따라 상반기 국회의 본회의 개회일수는 월평균 3.16일, 상임위 개회일수는 월평균 4.7일 꼴로 나타나 산적한 위기극복 현안에 비하면 의원들의 입법활동은 거의 `전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의원수도 국력이나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미국과 일본은 양원제임에도, 각각 40만2천명, 16만7천명당 1명씩의 의원을 뽑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단원제인데도 15만8천명당 1명꼴로 의원을 뽑는다.
국내총생산(GDP)을 의원 정수로 나눠 `의원 1인당 GDP'를 산출할 경우, 우리나라는 15억달러로, 미국(1백36억달러), 일본(68억달러)에 비해 훨씬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를 감안, 여권이 국회의원 정수를 2백50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밥그릇'을 걱정한 의원들의 반발기류가 적지 않아 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IMF사태를 맞아 실직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전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임에도 불구, 50년 정치사에 깊게 뿌리내린 `돈정치'의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이후 실시된 6.4지방선거와 7.21재.보선에서도 `금품살포 시비'는 예외없이 일어났다.
사회 각 분야의 `군살빼기' 흐름과는 동떨어지게 방대한 중앙당과 시.도지부,지구당으로 이어지는 정당구조가 계속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중앙당은 엄청난 규모의 건물에 수백명씩의 유급 당료를 두고 있으며, 의원 개개인들도 월평균 1천만원 이상의 유지비가 들어가는 지구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를 비롯한 국민들은 `저비용 고효율 정치'를 위한 중앙당 축소, 지구당 폐지, 상향식 공직후보 추천제도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온 국민이 `IMF 터널'을 빠져나기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채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이같은 정치개혁 요구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불신은 `분노'로 폭발할 것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