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EU 신화학물질관리제' 정부 대응 허술

"부처 이기주의·뒷북행정 기업 혼란·부담 가중"<br>부총리 주재 정부 대책회의서 환경·산자부 이원화체계 굳혀<br>민간기업보다 대응 속도 늦어 업계 "실효성 없다" 비판도


지난 6월 본격 발효된 유럽연합(EU)의 강력한 환경규제 제도인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에 대한 정부의 대응체계가 크게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속도가 대기업 등 민간 부문에 비해 한참 뒤져 있고 행정체계도 환경부와 산업자원부로 이원화돼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민간을 도와주기는커녕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31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EU 신화학물질관리제도 대응 추진성과 및 향후 계획’을 논의, 의결했다. 관계부처 장ㆍ차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범정부 차원에서 REACH 대응을 논의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응의 첫 단추로 EU 컨소시엄 참여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협의체를 ‘물질별 협의체’와 ‘업종별 협의체’로 이원화,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또 EU 수출기업 지원을 위해 지방 순회교육과 특정 주제별 집합교육을 동시에 추진하는 한편 민간 컨설팅업체와 기업간 연계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관련 업계는 정부의 이날 결정이 오히려 업계의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로 지적돼온 환경부와 산업자원부의 이원화된 행정체계가 오히려 굳어졌다는 것이다. 예컨대 업종별 협의체는 산자부가, 물질별 협의체는 환경부가 각각 주관부처가 돼 협의체를 구성, 운영하게 돼 있다. 굳이 협의체를 나눌 필요가 없음에도 정부 부처간 ‘제 몫 챙기기’로 인해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다. 업계의 통합 요구에도 불구하고 산자부와 환경부는 여전히 각각 ‘REACH기업지원센터(reach.or.kr)’, ‘REACH대응센터(reach.me.go.kr)’ 등 별도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조직 명칭은 물론 인터넷 주소까지 비슷한 두 곳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양이나 질에서 별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두 부처는 올 초부터 각각 전국을 돌며 REACH 순회 설명회 및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내용으로 이뤄지고 있어 예산 낭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강사 자격으로 두 부처 설명회에 모두 참여했던 T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주관부처만 다를 뿐 사실상 성격이 같아 대부분의 강사들이 중복된다”며 “이들조차 부처간 이기주의로 인해 정부의 REACH 대응체계에 비효율성과 낭비적 요소가 많이 끼여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날 발표된 정부의 향후 계획 역시 업계의 발빠른 대응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LG화학 등 주요 기업들은 이르면 9월부터 EU 현지 대리인 선임 등 사실상의 ‘액션’을 취할 계획”이라며 “민간 부문의 대응속도에 비춰 기업ㆍ컨설팅업체 간 연계 활성화 등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한참 뒤늦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와 관련, 업계는 국내에서 턱없이 부족한 유해화학물질 전문시험기관(GLP)의 확충부터 정부가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화학연구원 등 국내 GLP 관련 기관이 시험할 수 있는 물질항목은 17~20건 정도로 REACH가 요구하고 있는 시험항목 60건의 30%밖에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설명회 등 일회성 행사 대신 실질적으로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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