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대형 매물 쏟아지는데… '관료 독단'이 M&A 판 깬다

시장흐름 역행·섣부른 개입으로 후유증만…

김효상 외환은행 본부장이 22일 외환은행 본점에서 열린 하이닉스반도체 운영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직접 참석해 6개 채권단 관계자들에게 전날 자신이 밝힌 '구주 인수 7.5% 이상, 신주 발행 10% 이내' 방침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이호재기자

실수 되풀이 한 유재한
채권단과 합의도 없이 하이닉스 인수조건 발표
"특정사 밀어주기냐" 불필요한 의혹 자초 현대건설에 이어 또 시끌 관료주의 휘둘린 우리금융
멍석 깔리기도 전에 강만수 회장 인수 의지
'짜고 치는 고스톱' 논란까지 부르더니 결국 원점으로 하이닉스반도체ㆍ우리금융지주 등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 매물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른바 '관료 리스크'가 M&A판 전체를 뒤흔드는 돌발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수조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M&A는 매도자나 매수자 모두 명운을 걸고 뛰어드는 거대한 거래인 만큼 철저히 시장과 경제논리에 따라 이뤄져야 후유증이 적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말기에 진행되는 최근 M&A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관료들이 전면에 나서 좌지우지하면서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관료의 독단이 시장의 판을 깨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막을 올린 하이닉스 M&A만 해도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현대건설 매각작업에 이어 또다시 섣불리 나서 채권단의 반발을 부르는 등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도 관료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딜이 시작되기도 전에 과도하게 전면에 나서면서 판을 깨버렸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고위관료들은 과거처럼 자신들의 말 한마디로 시장을 장악하고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다"며 "과거의 타성에 젖은 고위관료나 전직관료들이 투박하게 나서면서 대사를 그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재한 잇따른 실책… 채권단 반발 불러와=유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22일 외환은행 본점에서 열린 하이닉스 운영위원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지난 21일 유 사장이 "구주 지분 중 절반 이상을 인수해야 신주 발행을 최대 10%까지 허용하겠다"고 구체적인 매각방침을 밝힌 데 대해 채권단이 강력 반발하자 이를 진화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운영위원회는 본래 임원급 등 실무진이 참석하는 자리로 사장급은 유 사장이 유일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최종 합의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시장에 가이드라인을 줘 특정 업체를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유 사장이 독자행동을 한 저의는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 사장은 회의가 끝난 후 기자와 만나 "어제 밝혔던 내용에 대해 채권단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며 "앞으로 하이닉스 매각과 관련된 모든 과정은 운영위원회 협의를 거쳐 하기로 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채권단은 이날 회의 후 보도자료를 통해 "출자전환 주식 매각비율 등에 대해 시장에 일관되고 공정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며 "매각거래와 관련된 주요 사항은 운영위원회 협의를 거쳐 정확한 정보를 시장에 전달할 것이므로 시장의 풍문 등에 혼선을 갖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벌써 "특정 업체 밀어주기 아니냐"=유 사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M&A시장에서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신주 발행과 구주 인수 비중은 인수전에 참여하는 후보기업들이 직접 제시해야 하는 조건이다. 또 그 비중에 따라 이번 인수전의 성패가 갈릴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이런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 사장이 '신주 발행 10% 이내, 구주 인수 7.5% 이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시장에 제시한 것은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를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 공동의 이익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밝힌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유 사장이 염두에 둔 특정 업체가 있는 것으로 해석돼 입찰참여자가 줄어들면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말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권 말기에 누구로부터 오더를 받았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제이고 오더가 없었더라도 매도자의 카드를 공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꼬집었다. 유 사장이 회의장에 직접 참석했지만 채권단의 앙금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관료 리스크'에 흔들리는 M&A판=관료들의 성급한 행동들 때문에 M&A판에 위기가 온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유 사장의 경우 지난 현대건설 M&A 때도 매각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과 현대건설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 유 사장은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강력히 반발했으며 이후 현대차그룹으로 방향을 트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우리금융매각 역시 관료 리스크에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산은 회장으로 보냈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민영화를 통째로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며 화답했다. 강 회장은 정부가 판을 만들기도 전에 우리금융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우려를 자아냈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멍석을 깔아줘 특혜론을 불러일으켰다. 시장에서는 "정부와 강 회장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반발이 일었고 지주사들은 "우리보고 들러리를 서라는 것이냐"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22일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아무리 김 위원장이라고 하지만 이번 일처리는 정말 투박했다"며 "관료들이 시장을 망친 전형적인 예"라고 일갈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신의 발언이나 태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무시한 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시장에 던지는 관료주의적 행태가 문제"라며 "이미 금융시장 환경이 크게 변화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행태는 오히려 혼선만을 초래할 뿐이며 국가적으로 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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