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건시장 "내 할일 했으니 이젠 떠날때"

고건 서울특별시장이 오는 30일로 임기를 마감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떠남의 미학'을 아는 인물이어서일까. 1,100만 서울시민과 4만5,000명 서울시 공무원들은 못내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25일 고 시장이 참석하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떠나는 그가 재임기간 이룬 공적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을 정도다. 김 대통령은 특히 난지도 쓰레기장에 평화공원을 조성한 일에 대해 "그런 기막힌 일도 해냈다"고 평가하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그의 지난 행보는 '행정의 달인' '클린 시장'이라는 별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러 정권을 거치며 일선 군수에서 국무총리까지 재임하면서도 한번의 잡음 없이 일을 처리해왔고 비리에는 단호하게 대처한 그의 이미지를 반영한 별명인 듯하다. 그러나 정작 고 시장은 "스스로 수칙을 정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켰을 뿐"이라고 겸손해한다. 수칙의 첫째는 '청렴'으로 61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던 부친(고형곤씨) 때문에 3년반 동안 제대로 보직을 받지 못하면서 청렴해야 살아남는다는 '생존법칙'을 터득했다고 밝힌다. 둘째는 '지성감민(至誠感民)'으로 즉 지극한 정성이면 국민이 감동할 것이라는 자세로 임했고 셋째는 '날로 바뀌는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늘 새롭게 했다(日日新 又日新)'는 것이다. 또 그는 '대권후보' 운운하며 떠들어대는 주변의 잡음에도 흔들림이 없다. 언론들의 숱한 인터뷰 때도 끊임없이 대권후보 문제를 거론하지만 정작 그는 허허 웃으며 "그때 물어보라. 그런 일은 없을 거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후보 출마요청에 대해서도 "재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98년 서울시장 입후보 당시부터 해온 시민과의 약속"라며 "내가 관선 때 벌여놓은 2기 지하철 문제나 서울시의 '복마전' 오명을 씻기 위해 민선시장으로 나섰고 이제 그 일들을 대충 마무리했으니 떠날 때가 됐다"는 말로 거절했다. 일부에서 재임 중 지나치게 '안전운행' 위주로 일해 흠집이 날 일이나 책임질 결정은 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서 그는 "적어도 시민들을 외면하고 정권에 충성한 일은 없다. 임명직 시장 때 수서특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청와대에서 한보그룹에 특혜를 주라고 압력을 넣었으나 끝까지 반대했다. '왜 혼자 손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 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럼 부정을 저지르란 얘기냐'고 되물으면 대개 대답을 못했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IMF사태로 서울 거리가 노숙자들로 들끓을 때 취임해 월드컵 응원으로 시청 앞이 붉은악마들의 함성으로 뒤덮일 때 떠난다." 보람도 아쉬움도 많았던 지난 4년간을 떠올리며 고 시장이 밝힌 퇴임의 변이다. 그는 89년 관선 서울시장 시절 첫 삽을 떴던 2기 지하철사업을 임기 내에 무사히 마무리한 점과 쓰레기 더미였던 난지도를 '월드컵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 등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았다. "지난해 서울에 내린 폭우로 수재민이 발생했을 때는 그들과 함께 비에 젖은 심정이었다"며 재임 중 가장 안타까운 순간을 회고한 고 시장은 "서초구 원지동에 '추모공원' 입지가 결정됐을 때 막무가내로 반발하는 지역주민들이 이해도 됐지만 한편으로 야속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 시장은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긴장을 풀고 좋아하는 테니스도 마음껏 치고 싶다"며 "직함은 명지대 석좌교수지만 한 학기에 몇번 특강을 하는 정도고 서울 종로구 여전도회관에 있는 10여평짜리 사무실에서 독서와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연구에 몰두하겠다"고 퇴임 이후 계획을 밝혔다. 그는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서 기업경영 개념을 접목해 좋은 행정을 펼쳐주기를 바란다. 특히 원지동 추모공원은 1,100만 시민에게 필수적인 복지시설이므로 잘 추진했으면 한다. 또 CEO적 감각으로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를 잘 발전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후임 이명박 시장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예술이 작품을 통해 감동을 주듯 행정도 정책과 서비스를 통해 시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지난 4년간의 시정을 정리한 회고록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떠나는 고 시장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최석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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