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TV드라마는 "단속 사각지대"

인터넷 P2P 통한 불법유포<br>저작권자 방송사 단속의지 없고<br>네티즌은 불법 인식조차 못해<br>향후 국제저작권 분쟁 비화 우려

해외드라마 매니아인 대학생 김모(23)씨는 TV로 드라마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시작으로 ‘앨리맥빌’ ‘섹스 앤 더 시티’ ‘위기의 주부들’ 등 유명한 해외 드라마를 섭렵해 온 김씨는 이 모든 드라마를 인터넷 P2P(Peer to Peerㆍ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개인 대 개인의 파일공유 기술 및 행위)사이트에서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아 시청했다. 김씨는 “케이블TV에서 대부분 볼 수 있지만 방영시간을 맞추기도 번거롭고 최신 시리즈는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며 “어차피 TV나 인터넷이나 돈 안 내고 보긴 마찬가지라 불법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 음악과 함께 TV드라마가 인터넷 P2P 사이트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건 낯익은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나 음악 다운로드가 최근 잇따라 법적 문제로 불거지는 것과 달리 TV드라마 파일의 경우 문제제기조차 없이 단속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파일을 주고받는 네티즌들은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저작권자인 방송사들 역시 사실상 불법파일을 방치하고 있다. ◇“단속 방법도, 의지도 없어”=영화계가 ‘영파라치’ 제도 등을 앞세워 강력하게 불법 동영상 퇴치에 나서고 음악계가 소리바다 등과 법적 분쟁까지 겪으며 공짜 음악을 몰아내는 데 앞장서는 것과 달리, 드라마 저작권자인 방송사들은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단속에 소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영화나 음악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반해, TV드라마가 불법동영상으로 입는 타격은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 국내 드라마의 경우, 지상파로 방영된 다음에야 동영상이 나돌 수 밖에 없어 시청률이나 광고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사실상 없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자회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운영하는 유료재방송(VOD) 매출 정도에만 영향을 끼친다. KBS 저작권팀의 한 관계자는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상업적이 아니면 어느 정도 봐 줄 수 밖에 없지 않나”라며 “수많은 P2P 사이트를 막을 수도 없는데다 네티즌들을 일일이 고소하기도 쉽지 않아 그냥 방치하고 있다”이라고 토로했다. ◇불법 동영상이 오히려 도움돼=최근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해외 드라마의 경우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국내에서 해외 드라마 방영창구 역할을 하는 케이블 방송사들은 불법 동영상 문제에 대해 “대처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해외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자 대부분은 드라마를 이른바 ‘찾아보는’ 열혈 마니아들. 20~30대가 대부분인 이들은 국내에 미방영된 드라마를 P2P 사이트에서 공유하며 까페, 블로그 등을 통해 방영 전부터 입 소문을 내고, 케이블 채널들은 이미 유명해진 드라마를 방영하며 이들을 자연스럽게 시청자이자 홍보 도우미로 확보한다. 케이블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케이블 채널은 재방송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불법이든 합법이든 일단 유명세를 타면 시청률 상승에 큰 도움을 준다”며 “P2P에서 다운로드 순위 목록이 판권을 사는 데 주요 참고자료가 된다”고 까지 밝혔다. ‘불법의 천국’인 P2P 사이트가 해외 드라마의 ‘테스트 시장’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국제적 분쟁 비화 우려”=이처럼 TV드라마 불법 동영상이 당장 방송사에 끼치는 악영향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미 영화나 음악이 불법파일 유포로 네티즌들이 대규모 고소, 고발된 사례가 있는 만큼, TV드라마 역시 이들과 법적으로 처지가 다르지 않다. 해외 드라마의 원저작권자가 문제제기를 할 경우 영화계나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법적 분쟁이 방송계에도 예외란 법은 없다. 김의석 온미디어 국장은 “구체적으로 실사가 들어오진 않았지만 미국 방송사들을 비롯한 해외 주요 방송배급사들이 불법동영상 문제를 조금씩 제기하기 시작했다”며 “당장의 간접적인 홍보효과만 보고 이 문제를 방치하면 국제적인 분쟁으로까지 비화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영파라치’(영화 불법동영상 단속)제도에 법률자문을 한 법무법인 일송의 김재철 변호사는 “해외 방송사들은 한국 방송사로부터 받는 판권료가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의 전부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영파라치 같은 형태는 당장 힘들더라도, 문제가 커지기 전에 국내 방송사들이 불법파일 문제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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