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14일] 제임스 쿡

벤자민 프랭클린이 미국 해군에 이색적인 지시를 내렸다. ‘영국 해군에 결사 항전하되 특정인의 함선에 대한 공격은 엄금할 것.’ 특별대우를 받은 주인공은 영국 해군대령 제임스 쿡(James Cook)이었다. 프랭클린은 쿡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적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벗이다.’ 프랭클린이 쿡을 인류의 자산으로 여긴 것은 두 차례에 걸친 탐험에서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과 남극해의 바다를 샅샅이 뒤져 뉴질랜드와 호주 동해안, 남극 끝자락 등 새로운 땅을 찾아내고 위도와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업적을 이뤘기 때문이다. 특히 2차 항해에서는 괴혈병의 원인이 비타민C 부족이라는 사실도 밝혀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귀국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로 쿡의 발견은 바다에 대한 영국 청년들의 도전의지를 북돋는 결과를 낳았다. 적대국에서도 인정 받던 쿡은 우발적 사고로 사망했다. 북극해를 탐험하다 잠시 기착한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충돌로 1779년 2월14일 죽었다. 49세였다. 사망한 쿡에게 영국은 ‘캡틴’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해양진출의 역사가 긴 영국에서 캡틴이라는 영예를 얻은 인물은 쿡을 포함해 단 두 명뿐이다. 죽어서 캡틴으로 추앙 받았지만 살아서 쿡의 일생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1728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가 아니라 잡화점과 석탄운반선에서 일하면서도 책을 통해 천문과 측량, 수학과 대수, 항해술을 익혔다. 민간상선 선장으로 일하다 27세에 말단 수병으로 해군에 입대한 후 장교로 임관되고 탐사단 선장으로도 뽑혔다. 어린 시절 스스로 습득한 측량과 항해술이 발탁 배경이었다. 인류는 아직까지 그의 신세를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지도가 오늘날 수준으로 정확해지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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