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미나에서 지역통합과 한국의 정책에 대해 발표를 마치자 한 외국 교수가 “한국이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것은 진기한(funny) 일인데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자유무역 협정은 경제 교류가 많은 나라와 체결해야 효과가 큰 데 한국이 수많은 나라 중에서 칠레와 협정을 체결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한-칠레 협정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초의 자유무역 협정으로서 우리에게는 중남미시장의 교두보를 만드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설명한 후 일본, 중국, 아세안 등 주요 교역 상대국과도 FTA 협상을 추진 중이라고 부연 설명했지만 개운치 않았다.
세계 여러 곳에서는 지금 경제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EU는 자유무역은 물론 통화까지 같이 쓰는 실질적인 통합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유럽 전역의 25개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미주 전역의 40 여개국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아세안 10 개국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으며 그 결속력을 유럽과 같은 수준으로 확대시킬 계획이다. 최근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려 기술 수준을 과시한 중국은 아세안과 협정을 맺기로 하였으며, 화교 경제권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146 개 회원국 중 공식 발효된 자유무역협정이 없는 나라는 여섯 나라뿐이다. 이 가운데 홍콩, 대만, 마카오 등 실질적인 중화경제권을 제외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완전히 고립된 외톨이인 셈이다.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외톨이인 한국과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 협정을 활발히 체결한 멕시코를 비교해 보자. 지난 90년 세계무역순위에서 우리는 11위를 차지한 반면 멕시코는 18위에 불과했다. 지금은 우리는 13위로 떨어진
데 비해 멕시코는 자유무역협정덕분에 11위로 올라섰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서의 실적을 비교하면 우리 상품의 점유율은 3.7%에서 3.1%로 떨어진 반면 멕시코의 점유율은 두 배로 늘었다. 우리가 계속 외톨이로 남으면 앞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은 세계경제 속에서 고립을 면하고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은 그 첫 발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칠레와 먼저 체결했는가. 미국, 중국 또는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범위가 넓고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커서 시간이 더 걸리고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우선 칠레와의 협정을 추진한 것이다. 칠레와의 협정 서명에 우리는 3년이 넘는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과반수가 넘는 국회의원이 반대하는데 막혀 아직도 효력 발생을 못 시키고 있다. 한해 3,000 억불이 넘는 무역규모를 가진 한국이 1,000만달러에 불과한 칠레산 농산물 수입에서 오는 `충격`이 겁나서 국제사회의 외톨이를 고집하고 있는 정말로 진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다. 세계무역기구에 의하면 2005년까지 전세계에서 300개의 자유무역협정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한다. 원래 국제무역규범은 범세계적인 WTO 협정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개별국가나 지역간의 짝짓기인 자유무역협정은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 왔으나 최근의 추세는 나라간의 짝짓기가 오히려 주류가 되고 있다. 아직 아무런 공식 지역협정이 없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지역주의의 확대가 불리하며 전 세계가 같이 참여하는 WTO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WTO의 도하개발 아젠다 협상은 부진한 상태에 있고, 또한 몸을 던져 WTO 협상을 막는 우리 처지에서 범세계적인 무역확대에 큰 기대를 걸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세계적인 지역주의에 대한 대응노력의 하나로 지난 번 발리에서는 한ㆍ중ㆍ일 3국간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금주에 있을 APEC 회의기간 동안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일본 수상과 한-일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세계 13위의 무역규모를 가지고 있고 대외무역을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국이 더 이상 세계경제 속의 외톨이로 남지 않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