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000억원 때문에 조종사들을 死地로

F-5 구형 조종석 때문에 비상탈출 못한채 10년새 13명 순직<br>고도ㆍ속도 ‘제로’ 상태서도 작동하는 신형으로 교체해야

지난 2000년 이후 F-5 전투기가 여덟 차례(11대) 추락해 한 차례를 빼곤 조종사들이 모두(13명) 숨진 것은 ‘사출(射出)좌석’으로 불리는 비상탈출 시스템이 구형(舊型)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18일 강릉 앞바다에 추락한 공군 18전투비행단 소속 F-5F(제공호) 전투기에는 비상시라도 고도 600m 이상에서만 조종석이 비행기 밖으로 튀어 오르는 구형 사출좌석이 장착돼 있어 고도 150~200m에서 비상탈출을 시도한 두 조종사의 사출좌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추락한 F-5F의 사고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순직한 전방석 조종사의 낙하산이 일부 펼쳐져 있었던 점으로 미뤄볼 때 조종사의 ‘비행착각(vertigo)’이 아닌 기체 결함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순직한 대대장 고 박정우 대령은 헬멧을 쓰고 낙하산을 맨 채, 고 정성웅 대위는 낙하산 줄에 얽힌 채 낙하산에 덮인 상태로 발견됐다. 통상 전투기의 정년을 30년으로 보는데 F-5는 대부분 25년 이상 돼 이미 정년을 넘었거나 정년에 가깝다. 당연히 전자장치 등도 최신 전투기에 비해 한참 낙후돼 있다. F-5E는 1975년 미국에서 도입됐고, 이번에 사고가 난 F-5F는 1983년 국내에서 조립ㆍ생산됐다. 오랜된 기종이라서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없으면 동종 기종의 부품을 대신 쓰기도 한다. 반면 공군 전투기 중 F-5를 제외한 다른 전투기들은 고도ㆍ속도가 제로(0)인 상태에서도 작동하는 ‘제로제로 타입’신형 사출좌석을 갖추고 있다. KF-16(F-16)이 2000년 이후 7차례 추락사고가 발생했지만 한 차례를 빼곤 조종사가 모두 생존한 것도 신형 사출좌석 덕분이다. 이에 따라 조종사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F-5 전투기들의 사출좌석을 시급히 신형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터키ㆍ대만 등의 F-5 전투기에는 신형 사출좌석이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ㆍ대만 정부만 조종사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일까? F-5용 신형 사출좌석은 개당 1억5000만~5억원이라고 한다. 10년차 F-5 조종사 한명을 양성하는데 42억원이 든다고 하니 숨진 F-5 조종사 13명에게 들인 양성비용은 500억원에 이른다. 우리 공군 전투기의 35%(170여대)를 차지하는 F-5의 사출좌석을 모두 신형으로 바꾸고 교체비용을 개당 3억원(전투기 1대당 6억원)으로 잡으면 총 1,000억원 가량의 예산이 든다. 예산 문제로 신형 전투기 도입이 늦어져 25년 이상 된 구형 F-5 전투기를 최장 10년 가량 더 운용해야 하고, 사출좌석을 못바꾼다면 F-5 조종사들이 순직해 허공으로 날아간 양성비용이 사출좌석 교체비용을 웃도는 불상사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공군과 국방부에 따르면 후배 조종사들을 교육하는 숙련된 소령급 조종사들이 지난 2004년 44명, 2006년 102명, 2008년 145명, 지난해 142명 전역했고 올해에도 140여명 전역할 전망이다. 대부분 민간 항공사 등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같은 현상은 진급율이 40%도 안돼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고 근무지를 자주 옮겨다녀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고충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국가가 자신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불신과 자괴감도 한 몫 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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