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금융규제와 혁신의 균형점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최대 세일기간인 블랙프라이데이에 해외 직접구매 방식으로 옷, 장난감, 심지어 TV까지 구매한다고 한다. 해외 직접구매가 증가한 원인은 해외 업체의 서비스 경쟁력 때문이다. 대표적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의 간소한 환불 절차나 액티브X 설치가 필요 없는 결제 시스템은 혁신적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제조업이 쇠퇴하며 유럽과 같은 늙은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아마존 등이 정보기술(IT) 혁신을 일궈내고 지금의 모바일 세상을 주도하고 있다.

규제에만 무게 쏠리면 시장 고사

이러한 기업 혁신은 엔젤투자·벤처캐피털·기업공개(IPO) 등 효율적인 자본시장 시스템을 통한 투자 덕분에 이뤄졌다. 이처럼 실물 경제는 효율적인 금융 규제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혁신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금융 규제와 금융 혁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국에서는 1920년대 대공황 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엄격히 구분하는 글라스스티걸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상업은행들이 다양한 증권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GLB)법 시행으로 금융 규제가 크게 완화됐다. 그후 미국 자본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다시 도드프랭크법이 제정되며 규제가 강화됐다.


이처럼 미국의 금융 역사에서 금융 규제와 혁신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있었다. 최근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잡스(JOBS)법' 시행으로 공모 규제는 완화하는 등 금융 혁신은 장려하고 있다. 또 금융회사의 업무가 금융 시스템이나 소비자에게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비조치의견서(No-action letter)를 통해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 금융 규제와 혁신의 관계는 다른 모습이다. 금융 규제가 광범위하게 작용해 금융회사 영업 전반을 크게 위축시킨다. 규제에만 무게가 쏠리면 혁신은커녕 시장을 죽일 수도 있고 혁신만 강조해도 버블을 통한 금융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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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금융정책에도 규제와 혁신의 균형을 위한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감독기관은 금융회사에 대한 직접적 규제보다는 금융회사의 위험 관리를 강조해야 한다.

위험관리-규제개혁 병행전략 필요

규제를 강화해도 회사의 근본적인 위험 관리가 되지 않으면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붐앤버스트(boom and bust)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금융투자산업은 은행과 달리 위험의 인수와 재분배를 근간으로 하는 비즈니스이므로 위험 관리가 아닌 위험 규제에 치중하면 비즈니스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 금지 행위만 열거하는 규제체계인 네거티브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자본시장법 시행 후 큰 틀은 네거티브 시스템인데도 하위 규정 등에는 가능 행위만 열거한 포지티브 시스템의 유산이 사실상 남아 있다. 최근 영국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이 기고문을 통해 "영국은 모든 규제를 다 풀 것이니 영국에 와서 비즈니스를 하라"고 발표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최근 규제 개혁 장관회의를 신설하겠다고 한 것을 환영한다. 모든 산업 분야 중에서도 가장 촘촘한 규제의 그물 아래 고사 상태에 빠진 금융투자업계로서는 정부가 규제 개혁을 통해 금융 혁신의 물꼬를 터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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