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여력 있을 때 미래투자해야

상장사들 가운데는 돈이 넘쳐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장사가 잘 돼 많이 벌었으나 투자 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현금을 그대로 쌓아두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30%가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에 그나마도 돈을 구할 수 없어 멀쩡하던 회사가 쓰러지던 상황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 같은 현금 쌓아두기는 위기대처 경영전략의 하나 이겠지만 경기촉진과는 엇박자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성장잠재력이나 국가경쟁력 저하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거래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 393개사(관리종목ㆍ금융업ㆍ신규상장사ㆍ자본잠식사 제외)의 올 1ㆍ4분기 잉여금은 175조1,668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2%가 증가한 것이다. 상장사의 총잉여금은 납입자본금 총액(39조1,354억원)의 무려 4배가 넘는 규모다. 잉여금은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사내에 유보한 자금에다 주식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모두 합친 것이다. 자본금 외에 기업이 갖고 있는 자금인 셈이다. 이들 상장사 중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1ㆍ4분기 말 현재 잉여금이 무려 20조8,465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24.07%나 늘어난 것이다. 이 회사의 지난달 말 현재 보유 현금만도 5조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는 잉여금이 8조3,692억원, SK텔레콤은 5조5,053억원 등으로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많은 잉여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이처럼 잉여금을 비축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은 대기업들로서는 지나친 투자나 잘못된 투자로 인한 재무구조의 악화나 유동성위기 및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안전한 길을 택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밑바탕에는 경기 전망의 불확실성과 정권 말기의 정책 가변성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유동성이 풍부해 위기에 대한 여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여 든든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투자가 더뎌짐으로써 사업역량 확대 기회를 놓칠 수 있고 또 국가경제의 성장잠재력이나 경쟁력 향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에 기대고 있는 수 많은 중소기업에 대한 파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래 지향적인 투자보다 위험이 낮은 공기업이나 부실기업 인수 등에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위기회피도 중요하지만 국가경제나 사회적 책임도 배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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