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1불=100엔 눈앞인데… 정부 나몰라라

부처차원 엔저 대책 없이 수출중기 지원책만 찔금<br>주력업종 망가지는데… 정부는 중기 피해만 외쳐


미국시장에서 국산 기계와 일본 기계의 가격 격차는 최근 5~10%까지 좁혀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20%까지 벌어졌지만 엔저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가격이 엇비슷해진 것이다. 국내 기계류 수출업체인 H사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 업체로 수입선 전환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가 달러당 100엔의 목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우리 정부의 엔저대책은 너무 안일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ㆍ철강ㆍ기계 등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수출 부진세가 뚜렷함에도 범부처 차원의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부처별로 찔끔찔금 내놓는 수출 중소기업 지원대책이 사실상 전부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수출부진을 극복해보겠다고 공언했지만 1ㆍ4분기 미국과 유럽연합(EU) 수출이 오히려 줄어드는 등 FTA 효과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한미 FTA 원산지 사후검증 등이 본격화되며 우리 중소기업들의 FTA 공포감만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저 흐름이 계속될 경우 자동차ㆍ철강ㆍ기계뿐 아니라 또 다른 주력군인 석유화학 업종에도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휴대폰이 버텨주고 있는 전기ㆍ전자제품을 제외한 국내 주력 수출업종 전부가 엔저의 파고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력산업이 무너질 경우 파장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중소기업들의 먹거리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엔화가 너무 빠르게 떨어지면 기업들이 대응할 여력이 없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산업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저에 따른 우리 수출업종들이 피해는 확실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ㆍ4분기 우리 수출은 철강제품이 6.7%, 기계류와 정밀기기 4.5%, 자동차가 2.9%나 줄었다. 모두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이 치열한 주력 제품들이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미국시장에서 일본 차가 4.8%나 늘어난 반면 한국 차는 3.4%나 줄었다.

국가별 수출 상황을 봐도 문제가 심각하다. 주력 시장인 미국(-4.6%)과 EU(-9.3%)로의 수출이 모두 좋지 않다. FTA 효과를 최대한 살려 엔저를 돌파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무색할 정도다. 엔화결제 비율이 높은 대일 수출은 9.5%나 줄었다. 중국(7.0%)으로의 수출이 그나마 늘지 않았다면 1ㆍ4분기 수출은 마이너스가 될 뻔했다.


◇중소기업 환 헤지 말고는 손 놓고 있는 정부=실물경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몇 차례 엔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환율과 금리에 개입할 수 없다 보니 현실적으로 산업 전반을 아우를 대책을 제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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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엔저 대책은 중소기업들의 환변동 리스크 관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들어 무역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 인수규모를 2조원까지 늘렸고 업체별 이용한도도 20%가량 상향 조정했다. 중소ㆍ중견기업에 환변동보험료를 할인해주고 환차익까지 볼 수 있는 옵션형 보험을 내놓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호응이 크지는 않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30% 수준에 불과한 것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대책으로 엔저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기계류를 수출하는 일부 중소기업들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기업 업종인 자동차나 철강의 경우 정부 차원의 대책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엔저에 대비할 시간…정부가 벌어줘야=엔화가 달러당 100엔을 넘어섰던 때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이다. 하지만 이후 엔화가치는 급속히 상승했고 '초엔고 시대'의 혜택을 받은 우리 수출기업들이 쑥쑥 성장했다. 이 때문에 일부 환율 당국자들은 현재의 엔화약세 흐름을 지나친 엔화강세를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우리 기업들이 '엔고'라는 대외환경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만큼 엔저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시간을 정부가 좀 더 벌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환율시장 개입 여부와 관련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수출 주력 업종을 살리기 위한 보다 전향적인 산업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엔저의 흐름은 정부가 그냥 방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자동차와 철강에서 이미 본격화된 수출부진이 조만간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높은 석유화학업종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가 FTA를 통해 수출부진 등을 극복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기업들이 원산지 검증 절차가 복잡해 관세 혜택도 포기하고 있다"며 "FTA 활용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앞으로 관세가 인하될 품목들을 전략적인 수출품목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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