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워크아웃 기업 그들이 돌아온다] <1> SK네트웍스

도전정신 재무장…3년만에 '행복날개' 활짝<br>해외법인 절반이상 축소·800여명 구조조정<br>'기업가치 10조' 새비전 내걸고 사기 북돋워<br>하나銀등 채권단지원 힘입어 긴급자금 수혈<br>경영실적 3년연속 목표초과 세계 공략 박차




“투표 직전 채권은행 한 곳이 돌연 공동관리 찬성에서 반대로 입장을 바꿨는데 개표가 끝날 때까지 회사를 살리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청산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3년반 전인 지난 2003년 6월17일 기업 사활을 결정하던 당시의 긴박한 상황에 대한 정만원 SK네트웍스 사장(당시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장)의 회고다. 개표 결과 채권단 찬성률은 80% 초반. 회사 회생을 위한 기준 75%를 간신히 넘겼다. 이 결정으로 2003년 1월8일 참여연대의 검찰 고발과 전격 검찰 수사가 시작돼 참여정부 집권 초기 금융시장과 재계를 온통 뒤흔들었던 ‘SK글로벌 사태’는 수습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었다. ◇‘여명 걷힌다’ 새 도전 시작=그로부터 3년여 기간이 지난 현재 SK네트웍스는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에 영향을 줄 정도의 ‘파워컴퍼니’로 자리매김했다. 수익기반도 탄탄해 웬만한 경영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입지를 구축해놓았으며 국내 기반을 바탕으로 중국 등 해외 사업장을 공격적으로 넓혀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산소마스크를 쓰고도 생존을 보장받지 못했던 기업을 이토록 강하게 바꿔놓았나. 워크아웃 돌입 이후 SK네트웍스는 창업(53년 4월 선경직물로 시작) 이래 가장 과감한 변신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40개가 넘었던 해외 법인과 지사는 17개로 절반 이상 사라졌고 경공업 무역 부문 폐쇄, 직물사업 분사 등이 진행되면서 800여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SK네트웍스로 사명을 바꾼 경영진이 회사 밖의 따가운 시선과 동료를 떠나보낸 자괴감에 허덕이던 임직원들의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회사의 새로운 비전 수립이었다. 오는 2010년까지 ‘기업가치 10조원의 세계적인 마케팅 회사’로 성장한다는 비전 제시와 함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직원들의 익명 게시판을 챙기면서 ‘다시 도전해보자’는 분위기가 회사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사업 아이디어가 매주 수십건씩 온라인을 통해 모여 현재 3,000여건이 넘는 사업모델, 업무개선 아이디어가 축적돼 있을 정도다. ◇채권단 지원이 주효했다=SK네트웍스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채권단의 역할이다. 맨 처음 사태가 터졌을 때는 채권단 역시 바짝 몸을 움츠렸지만 조기에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회사 회생을 위해 금융기관들이 힘을 합치면서 예상보다 빨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 사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숨겨진 부실이 터져 나와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 줄도 몰랐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104개 채권 금융기관 가운데 59곳이나 직접 찾아갈 정도로 채권단을 찾아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만나자는 사람은커녕 만나주려는 사람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채권단에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나왔다. SK네트웍스의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은 그해 3월 정보독점과 파생이익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8개 은행과 공동대책본부를 결성했다. 공동대책본부는 확대되는 검찰의 수사 속에서도 SK네트웍스를 수술대 위에 올려 환부를 도려내고 긴급자금을 수혈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김승유 당시 하나은행장이 직접 나서 채권단간 정보공유 및 사전사후 협조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업무처리를 강조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채권단 공동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이남용 하나은행 부행장보는 당시 동남아를 강타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공포도 잊은 채 홍콩ㆍ싱가포르ㆍ영국 등 해외 채권단을 찾아 다녔다. 그는 “SK글로벌의 경우 현대나 대우그룹 사태와 달리 그룹은 건재한 상황에서 홀로 어려움을 겪어 오히려 사태 해결이 더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지만 하나은행 입장에서도 위기관리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회생으로 가닥을 잡은 뒤에는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채권할인매입(CBOㆍCash Buy Out) 비율을 두고 논란이 거셌다. 김 행장은 여러 차례의 협상을 통해 국내 최초로 해외 채권단과 내국인 채권단의 CBO 비율을 동등하게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김 행장은 “어려웠지만 해외 채권단에게도 원칙을 지켜내자 언론을 비롯해 외부에서 구조조정 모범 케이스라고 평가했다”며 뿌듯해했다. ◇협력사와 임직원 희생은 영원한 부채=SK네트웍스의 거래처와 투자자들도 회사 정상화에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을 휘청거리게 만든 사태가 터져도 SK네트웍스와 거래해온 주유소들 가운데 경쟁사로 폴사인을 바꿔 단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주유소 사장은 “SK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고객을 위해서도 SK 간판을 지켜야 했다”고 말했다. 감자를 위해 전 임직원들이 소액주주들의 동의서를 받으러 다닐 때도 많은 소액주주들이 회사를 탓하기보다 기운 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기도 했다. SK네트웍스는 1조원의 현금을 확보하기로 한 채권단과의 약속은 이미 지난해 말 20%나 초과 달성했다. 경영실적이 3년 연속 목표를 넘어서며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걸맞게 세계시장 공략에도 한층 고삐를 죄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SK네트웍스의 회생에서 협력사와 임직원의 희생은 두고두고 갚아야 할 영원한 부채”라고 말했다. 주유소·車정비업·패션등 진출 '중국경영' 그룹내 최전방 우뚝
단둥·선양에 내년말까지 복합 주유소 30곳 운영
패션부문 '아이겐포스트' 연내 매장 30개 오픈도
'중국 경영'을 선언한 SK그룹이 중국과 관련해 가장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계열사. 지옥 문턱에서 돌아온 SK네트웍스의 그룹 내 위상이다. 현재 선양시에 2곳의 주유소를 개설한 SK네트웍스는 올해 말까지 단둥과 선양에 복합주유소 매장을 10개까지, 내년 말에는 30개까지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중국 지방성정부 관계자들이 최근 SK네트웍스에 주유소 진출지역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몇 년 뒤에는 동북3성 지역 곳곳에서 '행복날개'가 펄럭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SK네트웍스는 중국 내 주유소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한국 내 마케팅 선도 기업으로 이끈 데이터베이스마케팅(DBM)을 중국에서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유소와 함께 자동차 정비사업인 '스피드메이트'는 쭝처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중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상하이에 문을 연 1호점을 통해 고객과 현지 시장의 반응을 분석,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해 중국 전역에 1만개 매장을 오픈한다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패션 부문은 수십개 매장이 문을 열고 패션리더로 부상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중국의 시상(時尙) 여성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국내에서 중저가 패션 캐주얼 브랜드였던 '아이겐포스트'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뒤 명품 여성 캐주얼로 포지셔닝을 바꿔 지난해 9월 베이징 소고백화점에 첫 매장을 열었다. 베이징 시내 주요 백화점을 중심으로 올해 말까지 30여개 매장을 열 정도로 반응이 좋아 캐주얼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 한중 수교 전부터 중국에서 사업을 벌여온 무역 부문은 중국 현지 바이어에게 중간재를 넘기는 단순교역에서 제조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철강사업의 경우 중국 둥관과 장자강 지역에 가공공장을 세워 중국 현지 수요처에서 요구하는 형태로 철강을 가공, 제공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현지 거래처들의 반응이 좋아 가공공장을 현지에 직접 운영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화학 교역사업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정만원 SK네트웍스 사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민족은 유목민 기질을 타고 났기 때문에 안에 머무르기보다 밖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말을 강조한다. 좁은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론이다. SK네트웍스는 정기적으로 중국 시장 소식지를 발간하는 한편 임직원들의 중국어 학습 지원, 중국 현지 연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을 낯설어 하지 않고 한국보다 더 친근하게 여기는 회사 분위기를 만들어 중국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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