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불붙은 자원전쟁] <1부-3> 전문성 있는 자원개발 감사돼야

제1부: 자원개발의 빛과 그림자<br>'사업평가' 유가·정권 따라 극과 극···"후환 두렵다"<br>유가 떨어지면 칭찬이 비난으로··· 가혹한 감사 시달려<br>"해외사업 실패때 면책장치 대통령령서 법령수준 높여야"



“몇년 뒤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차하면 감옥에 가거나 징계를 받을 수도 있고….” 해외자원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 부처의 관계자들은 당장의 실적압박보다는 3~4년 뒤에 몰아칠 후폭풍이 두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해외의 유전을 사들이거나 탐사ㆍ개발권을 따내는 것에 대해 지금은 열광적인 국민들의 환영이 있지만 이 광구들이 부메랑이 돼 자신들의 목을 죌 수도 있다는 점이 두렵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화면을 10여년 전으로 돌려보자. 1ㆍ2차 오일쇼크를 겪은 뒤 우리나라도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지난 1990년에 리비아의 엘리펀트유전에 이어 1992년 베트남의 11-2광구 등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리고 1996년에는 영국 북해에 위치한 캡틴유전의 지분 15%를 미국의 텍사코사로부터 2억1,000만달러에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매입기준가가 18달러로 우리나라 최초의 개발유전 인수였다. 캡틴유전은 매장량 2,000만배럴로 오는 2023년까지 채취가 가능하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 현재 한국에는 대박 유전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북해 캡틴유전이 우리나라의 해외자원 개발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우리가 인수한 캡틴유전의 텍사코사 지분은 시장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만큼 알짜 물건이었다. 이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텍사코사에 한국의 석유비축기지를 개방해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우리 석유비축기지를 텍사코사의 동북아 전초기지로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제안에 텍사코사가 솔깃했고 결국에 지분을 인수할 수 있었다.”(당시 인수에 참여했던 관계자) 인수가격은 배럴당 18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가격수준은 국제유가가 잠시 급락하면서 인수 관계자들의 목을 죄는 부메랑이 됐다. “거래가 성사된 뒤 곳곳에서 들려왔던 칭찬은 순식간에 비난으로 바뀌었고 몇년간 그렇게 괴롭힐 줄 몰랐다”고 당시 인수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회고했다. 인수시점은 1996년, 그리고 1년 뒤인 1997년은 국제사회가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로 흔들렸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의 증산경쟁에 불을 붙이면서 국제유가도 급락했다. 순간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근처를 찍기도 했다. 그러자 한해 전 인수한 북해 캡틴유전을 둘러싸고 나라가 시끄럽게 됐다. 석유공사가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샀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감사원을 비롯해 정치권 등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심지어 거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은 물론 가족 등 주변인물의 은행계좌까지 조사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뇌물을 받고 인수한 게 아니었냐는 것이다.”(캡틴유전 인수에 참여한 관계자) 또 다른 관계자도 “그렇게까지 조사를 받고 비난을 받다 보니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유전을 다시 팔라는 압박도 컸다. 만약 되팔았다면 어떻게 됐겠는가”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주개발률 목표치만큼 비례해야 할 보호장치=원유ㆍ가스 등을 개발하는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자주개발률 목표치만 높게 세울 것이 아니라 (자원개발자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도 “비록 목표치가 높기는 하지만 자주개발률 목표치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하려면 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후, 즉 원유 가격 등이 떨어졌을 때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목표치는 만만치 않다. 정부가 5년 뒤인 2012년 달성하겠다고 밝힌 원유ㆍ가스의 자주개발률 목표치는 18.1%다. 지난해 달성한 자주개발률 4.2%보다 실적을 3배 이상 더 올려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다. 2016년까지는 23%에 달한다. 막대한 자금도 소요된다. 정부가 지난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까지 원유ㆍ가스의 자주개발률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은 26조원이다. 달러 기준 대략 260억달러로 매년 26억달러가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가 해외자원개발에 사용한 금액은 25억5,000만달러로 목표치 달성에 필요한 26억달러 수준에 근접했다. 25억5,000만달러는 2006년에 비해 34%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고치다. 더구나 석유공사 등 기업들은 올해는 56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자주개발률 목표치 달성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이 같은 투자열기 때문이다. 관건은 유가가 떨어질 시점의 사회적인 안전장치다. 1997~1998년의 경험이 아직도 그만큼 쓰리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목표는 높지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원개발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지금 자원개발을 했던 사람들은 감옥에 갈 수 있다. 유전이나 탄광을 비싸게 샀다는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전문성 있는 감사가 돼야=해외자원개발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감사원의 감사 등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 있는 감사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한 유전 전문가는 “해외유전개발사업이나 국제석유산업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감사를 한다고 하면 누가 수긍하겠는가”라며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감사 결과가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열심히 해외를 뛰어다닌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 이는 참 서글픈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령 수준에 그치고 있는 안전장치=정부는 올해 2월 ‘공기업 등의 해외사업 촉진에 관한 규정(대통령훈령 제211호)’을 제정, 시행에 들어갔다. 규정에는 한국전력ㆍ석유공사ㆍ가스공사 등 해외에서 에너지ㆍ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공기업에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이유로 해외사업이 실패하거나 중단됐을 때는 이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도록 했다. 또 채용에 한계가 있었던 해외 고급 기술인력을 보다 수월하게 충당할 수 있도록 별도의 보수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해외사업으로 인력수요가 있으면 정원 외 인력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에이전트를 고용해 자원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근거도 마련했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초 보호장치를 법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대통령령 수준에 그쳤다”며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한계는 있지 않겠냐”면서 기대가 크지 않음을 나타냈다. 보호수준을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법령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캡틴유전 같은 일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며 “해외자원 인수와 개발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민간 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자원개발사업은 1~2년이 아니라 10~20년 만에 평가되는 사업이라는 것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있어야 한다”면서 “감사원 등에서도 전문 감사인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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