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권 경쟁에서 고배를 들었을 때, 2012년 청와대 재입성에 축배를 들었을 때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변함 없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였다.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의 창시자로, '창조경제'의 전도사로 김 원장은 '근혜(GH)노믹스'의 설계자다. 새 정부 출범 후 학계와 재계, 금융과 과학기술계를 막론하고 김 원장에게 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배경이다.
김 원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100분 인터뷰'를 통해 "모호하다"는 논란이 제기된 창조경제의 개념과 지향점을 재정립하고 박근혜 정부의 경제적 현안들에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서강학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그는 "경제를 볼 때 성장과 상생, 위기관리 세 가지를 균형 있게 봐야 하는데 지금 첫 번째는 경제위기 관리"라고 단언하며 "한국만 경기부양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이어 정부가 준비하는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26조원 이상 필요하다" 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는 내리고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다시 합쳐 정책금융을 주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해운업은 전체가 불황에 직면해 있고 건설업은 절반이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며 위기의 경제 상황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 원장은 또 새 정부를 향해 "대통령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 행정개혁을 위해 대선 1번 공약으로 제시한 '정부 3.0'체제가 온데간데없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 "창조경제의 원저자는 박 대통령"이라고 강조하며 "창조경제의 핵심은 결국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으로 과정이 길다 보니 '말하는 사람'의 방점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어 혼동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 방향의 최대 현안인 추경이 화두에 오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으로 향했다. 그는 펜을 잡고 '성장(일자리)' '상생(경제민주화)' '경제위기 관리'를 삼각형 형태로 칠판 위에 세우고 서로 화살표로 연결했다.
김 원장은 "이 셋이 모두 관계가 있고 영향을 주고 받는 데 균형 있게 보지 않으면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예를 들어 상생 하나만 추구하면 성장과 위기관리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책 담당자는 이들 셋에 대해 시점과 경제상황에 따라 우선할 것을 판단해야 한다"며 "지금 제일 필요한 건, 1번은 위기관리"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고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62%로 떨어져 일자리가 70만개 이상 없어졌고 30대 대기업집단 중 적어도 3개는 실질적으로 파산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 "상장사 1,200개를 조사한 결과 220여개가 한계 상태며 건설업체는 50% 이상이 도산 위기를 맞고 있으며 해운업은 전체가 불황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이 같은 경제위기를 관리하지 못하면 성장동력 자체가 약화돼 일자리 창출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러면 복지는 죽는 것"이라며 "일자리 말고 더 좋은 복지가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지난 대선의 화두인 경제민주화 역시 경제위기에 묻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기업조차 생존이 어렵고 재무구조가 나빠지는데 중소기업과 노조를 챙길 수 있느냐"면서 "상생은 (위기 극복이 안 되면)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경제위기가 가장 먼저, 강하게 옥죄는 것은 결국 서민 경제"라며 "세계 전체를 놓고 보면 전부다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만 경기부양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일본은 정부가 명확한 정책목표를 시장에 제시했다. 물가가 2% 오를 때까지 돈을 무차별적으로 풀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김 원장이 뒤늦게 추경 편성에 나선 관료들에 대해 책임론을 추궁하고 나선 것은 그가 지난해 대선 이전부터 1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 마련 등을 정부에 촉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서야 경기부양이 첫 번째 정책 대열에 섰는데 세수 감소 추산액 12조원은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은 경기부양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그는"모자란 예산 가운데 지방 재정 4조원은 정부가 빼놓고 있다"고 지적하며 "중앙과 지방을 합치면 부족한 세수는 16조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이어 "경기부양을 통해 0.5%가량 성장률을 끌어올린다고 할 때 여기에 필요한 경기부양 예산은 10조원 정도로 추산돼 결론적으로 총 추경 규모는 26조원 이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통합당 등 야당이 "법인세나 소득세 등 증세를 통해 추경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정책을 죽이는 정책"이라고 일갈하며 "추경의 목적이 경기부양인데 증세는 이를 상쇄하는 것으로 깊이 생각조차 안 해본 논리"라고 비판했다.
김 원장은 "재정 건전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지금은 추경의 목적인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춘 후 중기 재정균형을 어떻게 이루고 향후 5~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를 어는 정도 수준으로 할 것인가를 합의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통화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김 원장은 또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에 대해서 "정책 우선 순위의 문제인데 한은의 목적이 '물가안정'이라고 소극적 관점에서 보는 듯하다"며 "세계 각국이 돈을 풀고 있고 추경을 앞둔 상황에서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려면 한은이 금리를 낮추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한은에 우회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한은에 있는 사람들과 금통위원만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라며 "한은이 기준금리 판단은 독립적으로 하더라도 외부에서 얼마든지 의견은 낼 수 있는 것이고 참조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정부의 정책금융이 경제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시점"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분리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재통합을 촉구했다. 그는 "창조경제에 요구되는 기술금융 자체가 위험성이 큰 만큼 정책금융의 역할이 중요하고 기업 구조조정도 해야 하는데 결국 이를 실행할 기관은 산업은행"이라며 "정책금융공사와 다시 합쳐 산은이 해운업계 등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새 정부의 첫번째 국정목표인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본래 대통령 작품으로 '네이밍(이름 짓기)' 등 원저자가 대통령"이라며 "단적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찾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창조경제'를 과거 방식으로 얘기하면 '산업구조 구도화'와 가장 비슷할 것"이라며 "하나는 현재 있는 제품을 고부가 가치화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존 산업을 고급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창조경제의 과정은 머리를 쓰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시작해 이를 제품화해 시장에 내다 파는 마지막 순간까지 복잡하고 길다"면서 "기업하는 사람은 최종 사업화 과정을 '창조경제'라 부르고 과학기술자는 최초 기술에 대해 '창조경제'라 하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는 융합을 '창조경제'라고 내세울 수 있어 듣는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창조경제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기 어려운 측면을 감사원이나 금융감독원 같은 기관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꼽으며 "정부가 중소기업 등에 정책자금 등을 지원하면서 위험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부분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특히 '창조경제'의 주축이 될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는 지적에 대해 "최초 구상과는 달라진 점이 적지 않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부처 간 '칸막이' 문제를 타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 부처 간 칸막이만 없어지면 특정 부처에 조직과 기능을 모아 놓지 않아도 된다" 면서 "박 대통령이 대선 기간 최초 공약으로 '정부3.0'을 발표한 것도 부처 간 칸막이를 100% 없애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결국 창조경제 승패의 요체 중 하나는 부처간 칸막이"라며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는 '정부3.0'플랜이 지금 사라져 버렸고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 3.0 공약은 관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면서 "박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뢰사회'를 위해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공약이 꼭 실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액 다수의 투명한 후원체제로 독립성 확보할 것 손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