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골프장 이름 중 흔히 등장하는 단어가 밸리와 힐스다. 국토의 70% 이상인 산지에 골프장을 지어야 하는 까닭에 계곡과 언덕이라는 명칭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경기 가평의 프리스틴밸리GC는 산지에 조성됐지만 여느 산악 코스와 다르다. 산세 좋은 곡달산과 통방산이 둘러싼 정남향의 코스는 마치 둥지 같다. 코스를 위한 부지인지, 부지에 꼭 맞춰 지은 코스인지 답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이 코스를 품고 있다. 가파른 경사도, 계단식의 홀 배치도 이곳에는 없다.
18홀 규모의 이 골프장은 뒤쪽의 곡달산을 뼈대로 한 프리스틴 코스, 남쪽의 나지막한 통방산을 배경으로 한 밸리 코스로 이뤄져 있다.
프리스틴 코스 1번홀(파5) 티잉그라운드에 오르면 이 지역에서 500년을 살아온 노송이 은근한 미소로 골프 나그네를 반긴다. 페어웨이 좌우에는 18m가 넘는 키의 장송이 늘어서 있다. 탁 트인 페어웨이를 향해 드라이버 샷을 날리고 나서 걷다 보면 시원한 골짜기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씻어준다. 울창하고 청정한 숲은 왜 프리스틴(Pristineㆍ자연 그대로의)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실감하게 한다.
산림욕을 하듯 전반 9홀을 마치면 밸리 코스를 만나게 된다. 밸리 코스는 해발 650m 통방산의 벽계 9곡 골짜기를 활용해 설계됐다. 계곡과 연못을 넘겨 쳐야 하는 곳이 여럿 있다.
밸리 코스 2번홀(파3)이 압권이다. 이 홀은 대자연의 압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잉그라운드와 아일랜드 형태의 그린 사이에 부귀연(富龜淵)이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고 그린 뒤로 통방산이 산성처럼 버티고 있다. 물을 건너 병풍 같은 산을 향해 티샷을 날리는 기분은 말 그대로 짜릿하다. 물속에는 또 하나의 통방산과 하늘이 담겨 있고 야생 오리와 두루미 등 새들도 한가로이 노닌다. 가평 명물 잣나무와 소나무를 비롯해 낙엽송과 개암나무ㆍ밤나무ㆍ오리나무ㆍ돌참나무ㆍ떡갈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홀 둘레를 에워싸 황제의 정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이 홀은 레귤러 티잉그라운드 기준 135~140m 정도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공략이 쉽지 않다. 그린이 땅콩깍지 형태로 좌우는 넓고 앞뒤로는 짧다. 짧게 치면 해저드, 그린을 오버하면 뒤쪽 천길 협곡 행이다.
이 홀에서는 홀인원이 2011년 3개, 지난해 10개, 올해는 지금까지 8개 나왔다고 한다. 눈 호강을 하고 홀인원의 기쁨까지 누린 골퍼들은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8홀 전체에 산재한 9개 연못 중 하나인 이 홀의 부귀연은 심미성과 전략성을 동시에 극대화한 설계자의 재치를 보여준다. 안팎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3번홀(파4)의 티박스와 페어웨이를 분리하고 4번홀(파4)의 페어웨이와 그린을 나누는 등 모두 3개 홀의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
밸리 5번홀(파5)은 자연 암벽과 계곡을 끼고 왼쪽으로 굽어진 도그레그 홀로 장타와 정확도를 시험한다. 밸리 7번홀(파4)은 그린 왼쪽 전방에 밀집한 10개의 분화구 같은 벙커가 조형미와 위압감을 동시에 전달하고 프리스틴 8번홀(파4)은 페어웨이가 좌우 2단으로 조성돼 티샷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8월15일 개장 10년을 맞는 프리스틴밸리GC는 자연에 녹아든데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설악IC에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어 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