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새 근로기준법이 통과되었을때 두가지 측면에서 감회가 새로웠다.하나는 지난 연말 벼락치기 통과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2개월내내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움을 가져왔으나 여야합의로 법이 성립되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도 비로소 선진국이 모두 실시하고 있는 「퇴직연금보험」이 도입됐다는 점이다.
퇴직연금보험제도의 근본적인 목적은 법정퇴직금을 1백% 지급할 수 있는 보장장치와 근로자의 퇴직 후 노후소득을 평생동안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연금형태의 지급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각계의 논의를 거쳐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선진국처럼 「보험형」의 퇴직연금제도를 도입, 입법화한 일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퇴직연금보험제도가 시행된지 불과 6개월도 안되어 정부가 퇴직연금 수탁기관을 은행, 투신 등에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각 금융권은 마치 금융권의 업무영역 확대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정책결정을 할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원칙은 그 정책결정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게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보다 합리적으로 해야하는 것이다. 사회제도나 정책은 그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그것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고자 하는 집단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퇴직연금제도의 문제는 이러한 원칙, 즉 이 제도에 의해서 수혜자가 될 근로자의 입장을 사실적으로 파악하여 합리적으로 대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금융기관이 이 제도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가 아니고 어느 금융기관이 취급해야 퇴직근로자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퇴직연금제도를 제공할 수 있는가다.
이러한 관점에서 퇴직연금제도는 보험제도의 운영원리에 입각하여 보험회사가 취급해야 한다는 당초의 결론이 매우 타당한 것이다. 이러한 결론의 타당성은 여러가지 합리적 이유로 설명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퇴직연금제도를 본래의 목적에 가장 맞게 운영하여 퇴직근로자의 니드를 최상으로 만족시킬 수 있으며 이종금융기관의 금융산업 전반의 발전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가장 최적의 역할분담이라는 것이다.
보험회사의 퇴직연금제도 취급은 ①복잡한 연금수리업무의 전문성 및 업무수행능력 ②연금사업의 리스크 인수기능과 장기적 자산운용 필요성 ③연금지급 업무의 효율적 관리와 장기성 ④연금지급의 객관적 보장 필요성 ⑤주거래 은행제도에 의한 불공정거래의 부작용 ⑥과당경쟁에 의한 시장질서 문란과 무리한 사업영역 확장에 따른 경영부실화 위험 등의 합리적 이유로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정책결정의 기준은 퇴직연금제도의 이용자 이익보호 측면이 공급자 이해관계보다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제도가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퇴직연금보험은 법정퇴직금의 일부를 기업연금화한 것이다.
기업의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국민연금제도가 보험형으로 운영되면서 종신 노령연금이외에 유족연금, 장해연금이 보장되듯이 퇴직연금보험도 이러한 국민연금의 제급여제도를 보완하여 공적, 사적제도간의 정합성과 보완성이 있어야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서 단순히 금융기관간 업무배분식으로 퇴직연금을 취급케 해서는 안되며 사회보장제도의 보완차원에서 접근해야 마땅하다.
개념을 알고 원칙과 합리성을 존중하는 사회만이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아무리 바빠도 제대로 된 길을 찾아서 가야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약력
▲미 오하이오주립대 경영학박사 ▲한국보험학회 이사 ▲한국금융학회장 ▲금융산업발전심의위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