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술과 예술에 취한 화가, 신선이 되다

임권택 감독 '취화선'10일 개봉되는 '취화선(醉畵仙)'은 거장 임권택 감독이 2000년 5월 '춘향뎐'에 이어 다시 2년만에 칸 영화제 붉은 카펫을 밟아 한국영화계에 '칸 무관(無冠)의 한'까지 풀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로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배경화면과 원숙한 연기력, 시각(한국화)과 청각(국악)의 조화 등이 '춘향뎐'보다는 훨씬 윗길인데다가 소재의 보편성이나 번역과정 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아 보인다. 첫 장면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이 술잔을 연신 입으로 가져가며 사대부집안 양반 식자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녹차를 달여 잔에 따르는 화면과 함께 타이틀 자막이 흐르고 회상 장면으로 이어진다. 청계천 거지소굴 근처에서 죽도록 맞고 있던 소년 오원(최민식)은 개화파 선비김병문(안성기)의 손에 거두어진 뒤 그의 소개로 역관(譯官) 이응헌의 집에 의탁한다. 그곳에서 중국 그림들을 한번 보면 그대로 모사하는 솜씨를 발휘하자 금세 이름이 알려져 화가 혜산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할 기회를 얻는다. 세도깨나 부리는 사대부치고 오원의 그림 한점 소장하지 않은 집 없을 정도가 되자 그는 궁궐로 불려가 어명에 따라 그림을 그리게 되나 타고난 기인 기질을 이기지 못한 채 붓을 내팽개치고 뛰쳐나온다. 화조(花鳥)나 산수(山水)나 인물(人物) 할 것 없이 두루 빼어난 재주를 갖추고있었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남과 다른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는 숱한 그림을 그렸다가 불에 태우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깨달음을 얻은 뒤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구도 행각을 연상케 하는 오원의 그림 인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여인들의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는 이응헌의 집에서 소운(손예진)을 만나 첫사랑을 느끼고 기생 출신의 진홍(김여진)과 동거하는가 하면 천주교 박해로 몰락한 양반 출신 기생매향(유호정)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취화선'의 가장 큰 매력은 빼어난 영상미에 있다. 하늘을 새까맣게 수놓는되새떼, 황금 물결 넘실거리는 억새밭, 끝없이 펼쳐진 들판, 눈발 날리는 개펄 등과타임머신을 탄 듯 완벽하게 재현된 19세기 서울 거리 오픈세트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날렵한 붓놀림에 따라 하얀 화선지에 하나둘씩 선과 점이 채워지면서 우아한 한국화가 완성되는 장면을 솜씨있게 카메라로 포착한 것도 미술관에서는 맛볼 수 없는즐거움이다. 오원이 내뱉는 대사도 최민식 특유의 천진한 표정과 어우러져 웃음과 함께 긴여운을 남긴다. 그는 그림 감정을 부탁하는 관리에게 '가짜'라고 말하며 친구에게 "지 아비 환갑이라고 해서 그려준 그림을 관청에 뇌물로 바쳤으니 가짜가 된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그림을 부탁해오는 사대부들을 가리켜 "지놈들 보고 싶은 것만 내그림에서 볼 뿐"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은 '서편제'에서 '등록상표'가 돼버린 특유의 롱테이크(길게찍기) 기법을 자제하고 장면을 비교적 잘게 나눴다. 젊은 관객의 기호에 맞게 경쾌함이 느껴지지만 유장한 맛이 없어지고 툭툭 화면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도 준다. 박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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