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에서 타협으로 균형을 잡아가던 노사정 관계가 다시 심상찮게 흐르고 있다.
경제 5단체 상근부회장단의 이번 긴급 회동은 노동계나 정부의 움직임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의지표명이다.
이에 앞서 노동계는 내주부터 총파업을 경고할 정도로 재계와 균열조짐을 보였으며, 정부 역시 (기업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행위를 제한하는 방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사용자-정부의 3대 축이 그동안의 균형에서 벗어나 대립과 균열의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날카로워지는 정ㆍ재계 대립= 김영배 경총 전무는 3일 5단체 상근 부회장 회동에 앞서 정부와 노동계를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김전무는 우선 정부의 손배ㆍ가압류 제한 방침에 대해 “법체계를 흔드는 일”이라고 정면으로 공박했다. 그는 “차라리 개별 사업장의 쟁의 행위에 대해 합법적인 범주를 판단하는게 낫다”며 사리에 맞지 않는 자세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조남홍 부회장도 회동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법 개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법치국가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경제5단체의 공동 성명에서도 “정부가 손배ㆍ가압류를 제한하려는 것은 노조의 불법 집단행동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노사 파열음 고조= 동투(冬鬪)를 목전에 둔 노사 양측의 분위기는 올들어 진행돼온 파업들과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잇따른 산업 현장에서의 사망과 분신이 연결되며 다분히 `정서적인` 양상으로 각(角)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사측은 노동계가 한진중공업 등의 사태를 겪으면서 축적된 불만들을 응축, 내년 춘투에 대비하겠다는 복안을 깔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2일로 예정된 파업에 밀릴 경우 파업 장기화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경총이 개별 사업장들에 긴급 통보한 4개항의 대응 지침을 통해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쟁의 행위에 대한 강력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도록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H기업 관계자는 “이번 동투는 내년 파업 상황에 대비한 예비전 성격이 강한 것같다”고 말했다.
◇노사 로드맵 차질, 기업은 수출 비상= 이번 사태가 확산될 경우 자칫 노사정 합의에 의해 어렵사리 마련한 노사 로드맵 구상이 `허상(虛像)`으로 끝날 수 있다.
김금수 노사정위원장은 이날 “이달 중순께면 정부의 노사개혁방안이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라고 밝혔지만 재계와 노동계에서는 벌써부터 `로드맵은 물건너갔다`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읽는데 4~5분이 걸리는 근로기준법을 만드는데도 5년이 걸렸는데 로드맵을 어떻게 이처럼 단시일내에 만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물며 노사정이 대립각을 곧추 세우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연내 로드맵을 노사 모두의 이해를 담아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이야기다.
현 상황에 대한 산업 현장의 불안감은 더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연말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춘투나 하투에 비해 20~30% 가량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수출 담당자도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말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기업들에게 동투는 사실상 자살행위”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