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盧대통령 재신임 묻겠다/배경ㆍ전망] “위기 정면돌파 벼랑끝” 승부수

취임 8개월밖에 안된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말은 충격적이다.가히 폭탄선언이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 현안을 이유로 직접 국민들로부터 중간 평가 성격의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이기 때문이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중간평가를 내세웠지만 실제 이행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이라는 벼랑 끝 카드를 내민 진의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초강수 발언이었던 만큼 국정운영과 정국 향방에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통령 리더십 부재 속에 이라크 추가 파병과 북한 핵 문제, 위도 핵 폐지장 건설, 새만금 간척 사업, 사패산 터널, 부동산 대책, 노사관계 선진화, 국민연금 개편, 퇴직연금 도입 등 수북하게 쌓여있는 국내외 현안처리가 제대로 되지않아 국정 공백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폭탄선언 = 10일 오전 10시 55분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 2층 브리핑 룸에 들어선 노대통령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얼굴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읽혀졌다. 노 대통령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비자금 수수 의혹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를 드린다”는 말로 긴급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 때까지 만해도 기자실 분위기는 `특별 기자회견이 이번 일에 대한 노대통령의 유감 표명이겠거니`하는 정도로 담담했다. 그러나 “아울러서 책임을 지려 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부터는 돌연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며 미리 준비한 초강수 발언을 풀어갔다. ◇정면 돌파 카드 = 노 대통령이 어떻게 보면 벼랑 끝 전술로도 보이는 재신임 카드를 뽑은 것은 무엇보다 참여정부가 정통성의 뿌리로 내세운 `도덕성`에 큰 생채기가 난 점이 크게 고려된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도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단단한 신뢰를 받지 않으면 중요한 국정을 제대로 처리해 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이 같은 배경을 뒷받침했다. 노 대통령은 아세안(ASEANㆍ동남아국가연합)+3(한ㆍ중ㆍ일) 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하는 것을 전후해 최 전 비서관의 SK비자금 수수 의혹, 386핵심 측근인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금품 수수설,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 입국에 대한 청와대 개입설등 악재 분출로 인해 막다른 궁지로 몰리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저는 모든 권력적 수단을 포기했다.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밑천일 뿐”이라며 참여정부가 처한 위기감을 명료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재신임 방법은 = 노 대통령은 또 “제 스스로 이 상태로 국정을 운영해 가기에는 어렵다”며 “도덕적 신뢰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을 때 어떤 장애라도 부닥쳐 나가고 극복해 나갈 수 있지만 그 점에 관해서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자부심이 훼손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나”라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언론환경도 나쁘고, 국회환경도 나쁘고 지역적 민심의 환경도 나쁘다”며 “이 많은 것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권력에 대한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도덕적 자부심”이라고 역설했다. 말하자면 노 대통령은 마음을 깨끗이 비운 상태에서 도덕성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것으로 난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복안을 드러낸 셈이다. 재신임 방법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를 포함해 공론에 부쳐서 적절한 방법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기는 최소한 총선이 치러지는 내년 4월 전후까지다. ◇국정 혼란 불가피 =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재신임 발언이 국정운용에 미칠 파장을 인식한 듯 “총리가 이전보다 더 책임있게 잘 보좌하고 국정을 이끌어가 주실 것”이라며 “국정의 혼란이나 공백이 없도록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정리더십이 재신임 상태로 공중에 떠 있을 내년 4월까지는 국정 혼란이 심화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편 이번 재신임 선언을 계기로 국민적 동정심을 유발시켜 새롭게 국정운영에 협조하도록 유도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적지않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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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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