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중산층 70% 복원 말로만] 주거·사교육비·빚 부담에 허리 휘청… 더 얇아진 중산층

정권 입맛따라 춤추는 소득기준 탓에

비중 늘었다지만 체감도는 더 떨어져

수혜기준 확실히 정하고 맞춤정책 펴야


정부의 중산층 복원 대책이 줄줄이 헛발질을 하면서 관련 정책의 전면적인 재점검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간 백화점식으로 온갖 정책들이 쏟아졌지만 국민들이 주관적으로 체감하는 중산층은 얇아지고 있다. 주거비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고용과 노후 불안까지 겹친 탓이다. 지금의 내수불황도 주머니가 홀쭉해진 중산층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따라 실효성을 따져 약발이 떨어지는 정책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새 판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차적인 과제는 고무줄이나 다름없는 중산층 기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책목표에 맞는 수혜층을 정하고 정책수단을 동원해야만 통계상의 중산층과 체감 중산층 간의 괴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봐도 중산층 가구 비율을 70%대로 회복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목표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이를 달성하려면 중산층으로 복원하려는 목표 계층을 정밀하게 특정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는 게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학계 모두 중산층 복원을 위한 핵심 대책에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가계부채 및 주거비용 경감 △교육비 과잉지출 문제 해소 등이 담겨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이들은 정부가 내건 민생 3대 정책과제이기도 하다. 고용개선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안정화하고 각종 비용성 지출 부담을 줄여줘야 가계가 저축을 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정은 딴판이다. 가계의 지출 중 주거비 비중은 지난 2012년 8.0%를 넘어선 후 지난해에는 8.2%까지 늘었다. 올해 역시 전월세가 인상 등의 여파로 주거비 부담은 가파르게 증가할 것은 불문가지다. 사교육비 경감도 요원하기만 하다. 국내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현재 6.7%에 달해 같은 기간 독일(1.0%), 프랑스(0.8%), 미국(2.4%)은 물론이고 땅값이 높기로 유명했던 일본(2.1%)보다도 훨씬 크다. 주요 선진국 대비 교육 가계비 지출 비중이 최대 6배에 달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중산층 복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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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정부는 대책을 손질하기는커녕 복원할 중산층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기존의 중산층 소득기준을 개편하고 소득 이외의 정성적인 보조지표도 신설하겠다던 정부의 정책은 지난해 11월 공식화됐지만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이 중 소득기준 개편작업은 아예 좌초됐다. 소득기준을 손질해봐야 차가운 여론의 질타만 자초할 뿐 실익이 없다는 판단으로 보이지만 중산층 70% 복원 목표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중산층을 구분하는 소득기준은 정권이나 정책에 따라 춤을 췄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첫해인 2008년 세제개편에서 중산층의 세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당시 소득세 과세대상 중 중상위 소득에 해당하는 구간의 과세표준 구간을 4,600만~8,800만원으로 개정했다. 이 정도 과표구간이라면 일반적으로 실제 소득은 5,000만~1억원대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난해 8월 발표된 세제개편안에서는 연봉 3,450만원(총 급여 기준)이 사실상 중산층 근로자의 기준으로 제시되며 증세 대상에 올랐다. 이후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정부는 증세 범위를 다시 수정해 상용직 월평균 임금의 150%인 5,500만원 근로자부터 세부담을 늘리기로 했다. 사실상 연소득 5,500만원 이상이 중산층으로 정의된 셈이다.

조세가 아닌 금융정책·부동산정책에서는 중산층의 범위가 또 다르다. 정부는 지난해 3월 도입한 일명 '재형저축' 가입기준으로 연소득 5,000만원을 상한으로 잡았다. 이대로라면 중산층의 연소득 범위는 5,000만원 이하가 된다. 그런데 다음달에는 정부가 중산층을 위한다며 내놓은 '4·1부동산대책'에서는 생애첫주택구입대출 신청자격을 연소득 6,000만원(부부 합산)까지로 제한했다가 6월에는 7,000만원(〃)까지로 또다시 변경했다.

정부가 중산층의 개념조차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 국민들은 스스로 중산층에서 벗어나 추락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지난해 8월 설문조사에서는 조사에 응한 전국 20세 이상 남녀 중 약 절반(54.9%)이 자신을 저소득층으로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의 공식 통계상으로는 중산층 비중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중위소득 50∼150%를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은 65.6%에 달해 2006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 당국자는 "저소득층의 생활형편이 나아져 중산층으로 새롭게 편입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고소득층 중 일부가 중위소득 계층으로 편입된 데 따른 통계적인 착시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당국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현 통계지표만을 기준으로 중산층 70%를 복원한다고 정부가 아무리 강조해봐야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왕 중산층 복원을 국정과제로 설정했다면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소득기준을 재산정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카드를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책카드의 개편은 단기정책·중기정책·장기정책으로 로드맵을 짜 구체화하되 백화점식 남발을 지양하고 주거와 부채·교육 등 가계 체감도가 큰 부문을 중심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는 킬러 아이템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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