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예보 공동계정·돈줄 구축 '투트랙'

시중銀 파이프라인 통해 돈 부족한 곳에 긴급 수혈<br>"관치 전형 될수도" 우려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은 부실 금융회사 처리를 위한 ‘전가의 보도’였다. 부실 회사를 구조조정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돈이 부족한 곳에 시중은행을 파이프라인으로 해서 구원하는 방식이다. 유동성 부족 위기에 처한 저축은행에 시중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해 3조원을 조성하기로 한 조치는 이 같은 종래의 매뉴얼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저축은행을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인수하도록 한 것에 이은 2단계 방책인 셈이다. ◇‘예보 공동계정+유동성 라인 구축’…투트랙 전략=당국이 구상한 저축은행 처리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정부는 우선 부실 저축은행 처리를 위해 10조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9일 한나라당과 가진 당정회의에서 “예금보험기금 공동계정 설치안이 도입되면 현재의 저축은행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해 10조원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공동계정 구성 문제가 조기에 쉽사리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부실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예보 공동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2월 국회에서 공동계정 문제를 매듭 지은 뒤 늦어도 4월부터는 자금 투입에 들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야당의 입장은 다르다. 저축은행 문제를 위해 은행 등을 동원하는 ‘변칙 플레이’를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하라는 것이다. 야당으로서는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현 정부 경제 정책의 ‘실책’으로 몰아 가고 싶은 셈이다. 이 같은 견해차는 2월 임시국회에서 그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자칫 2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수도 있다. 정부의 구상이 송두리째 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당국은 결국 또 다른 방책을 세웠다. 바로 시중은행의 쌈짓돈을 동원하는 것이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삼화저축은행 문제가 터진 후 급격하게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메우기 위해 일부 저축은행들은 5%를 넘는 고금리 정기예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창고를 채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다. 뱅크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공동계정을 통해 부실 저축은행을 처리하기도 전에 멀쩡한 곳까지 예금인출로 망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 당국자는 “외환위기 직후 저축은행들이 한꺼번에 40곳 이상 문을 닫았다”며 “불안심리 때문에 우량한 곳까지 한꺼번에 영업이 정지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로서는 시중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해 크레디트 라인을 만들어 돈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곳에 대해 대출을 해줌으로써 최대한 시간벌이를 하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팔 꺾기인가…자발적 선택인가=문제는 이 같은 구상이 관치의 전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구상에 당국이 개입한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삼화저축은행 문제가 터진 후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로 들고 왔다”며 “당국은 이번 조치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도 겉으로는 이 조치를 수행하더라도 크게 밑질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일 당국과 저축은행 지원에 합의했다”며 “정책금융공사가 대출금액의 50%를 보증해주고 담보도 설정할 예정이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탐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금융지주회사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 또한 사실상 정부의 ‘팔 꺾기’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당국은 LG카드 사태 등에서도 이번과 같은 조치를 꺼낸 적이 있는데 당시만 해도 금융시장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급박함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대신 신용공여한도를 설정함으로써 부실 처리를 뒤로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를 통해 저축은행을 인수하도록 하는 것은 대주주의 책임을 강하게 물어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지만 유동성 공급은 부실 처리를 도리어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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