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비싼 집과 좋은 집

[발언대] 비싼 집과 좋은 집 이봉형 거래가격 1억2,220만달러(우리 돈 1,222억원), 103개의 방에 5개의 수영장ㆍ스쿼시ㆍ볼링ㆍ테니스장이 딸려 있고 50석 규모의 극장도 있는 영국 윈들스햄의 저택.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선두를 다투는 대저택이다. 하지만 대저택의 풍광과 규모와 가격에 놀라면서도 과연 이들 저택의 주인은 누구일까 하는 문득 떠오르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주택ㆍ아파트ㆍ부동산, 그리고 시시각각 쏟아지는 각종 부동산 정책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부동산 열풍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청약을 위해, 아니 팔자를 고치기 위해 묻지마 투자식으로 강남으로, 분당으로, 판교로 밀물처럼 몰려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부동산 투기의 일상 속에서 이미 집은 인간 삶에 필수적인 의식주의 한 축으로서 전통적인 가치는 사라졌다. 재산증식의 최고 수단이 된 지 오래이며 소유와 규모, 그리고 가격에 따라 신분과 빈부를 가르는 척도가 돼버렸다. 천민자본주의의 만연에 따른 가치관의 혼돈과 공동체 정신의 실종으로부터 비롯된 이 혼란스러운 부동산시장에서 좋은 집이란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부동산 투기 그 열기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비싼 집, 돈이 되는 집이 아닌 살기 좋은 집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에 서있다. 지난 90년대 초 부동산 거품 파열 후 10년이 넘도록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던 이웃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거시적 관점에서 집을 집으로 보고 이해함으로써 부동산 투기 광풍 그 후를 대비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 평당 4,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를 보자. 넓은 평수에 여유로운 공간, 양호한 교통과 교육환경, 고급 내외장재, 최첨단 경비시스템과 초고속인터넷망, 사회적 특권층으로 구성되는 입주민들, 그리고 그들과의 격식 있는 분위기라면 좋은 집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물리적인 환경에서 본다면 좋은 집의 조건을 일부 충족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웃과 단절되고 주거환경에 비해 턱없이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이런 집들은 비싼 집, 아니 돈 되는 집은 될지언정 좋은 집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무릇 좋은 집이란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함께 집 자체에 생명이 있고 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좋은 집터의 구성 조건으로 “지리(地理)가 아름답고 생리(生利)가 좋지 못하면 오래 살 곳은 못되며, 생리가 좋고 지리가 좋지 못하여도 역시 오래 살 곳은 못된다. 지리와 생리가 모두 좋다 해도 인심(人心)이 좋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함이 있을 것이고, 근처에 아름다운 산수(山水)가 없으면 맑은 정서(情緖)를 기를 수가 없다”고 설파한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말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천민자본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집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자연과 사회ㆍ문화적 질서를 수용하며 가족의 쉼터와 일터가 되고 이웃이 있고 대화가 있는 곳으로 우리의 집이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동산시장 버블 붕괴 이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입력시간 : 2006/11/1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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