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그룹 공동 창업주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이 지난 20일 오전9시께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이다.
LS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틀 전에도 삼성동 아셈타워 사무실에 나오시는 등 상당히 정정하셨는데 판교 자택에서 갑자기 별세해 LG가의 슬픔이 더욱 크다"며 "거의 매일 출근해 경영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열정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1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바로 럭키화학(현 LG화학)으로 입사, 기업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럭키화학 뉴욕사무소장∙전무,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사장, LG그룹 부회장, E1&LG상사 회장, LG그룹 창업고문 등을 역임하며 LG그룹 성장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석유화학 업계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1967년 미국 칼텍스와의 합작을 성공시키며 민간 석유화학공업의 시초인 호남정유를, 1984년에는 한국 최초 액화석유가스(LPG) 전문회사인 여수에너지(현 E1)을 설립함으로써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런 석유화학과의 인연과 애착으로 2003년 LG그룹에서 LS 분리 당시 E1이 에너지 계열임에도 반드시 갖고나가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LS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달리 E1의 지분을 구 명예회장 일가가 100% 소유하고 있는 이유다.
구 명예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국제통으로 '재계의 외교관'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재계 원로로는 드물게 탁월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3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위원장을 지냈고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PBEC 국제회장도 맡았다. 또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한일경제협회 고문 등을 지내며 국제 민간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로 인해 1966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발전 공로로 필립하비브 국제전략지도자상과 중남미경제발전 공로로 페루대십자훈장을 연거푸 받았다.
또한 구 명예회장은 2002년 월드컵축구 유치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가 사상 첫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무역협회장 재임시 1조2,000억원 규모의 COEX 건립을 주도함으로써 무역인프라 구축은 물론 제조업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고인은 LS그룹 공동 창업주로 그룹의 안정화와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LS그룹 출범시 형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동생인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공동 경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정착시켰다. 그 결과 LS그룹은 지난 9년 동안 매출이 7조원에서 30조원으로 4배 이상 급증하며 재계 자산순위 13위로 부상했다.
LS그룹에서는 창업자인 이들 삼형제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 '태평두'로 불린다. 이들 삼형제 일가는 LS지주 지분을 4대4대2의 비율로 나눠 갖고 있고, 태평두 삼형제의 아들인 구자홍 LS그룹 회장과 구자열 LS전선 회장 등이 사촌 간 공동 경영을 맡고 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문남 여사, 장남 구자열 회장, 차남 구자용 E1 회장, 3남 구자균 LS산전 부회장, 딸 구혜원 푸른그룹 회장 등이 있다.
구자열 회장은 "아버지는 '묵묵히 일하고 깨끗이 떠난다'는 평소 원칙을 지켜온 참 기업인으로 우리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라며 "기업 경영에서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은 2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