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ㆍ고령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낡고 오래된 공동주택의 유지보수나 재정비 문제가 시장과 정책 부분에서 모두 뜨거운 이슈가 됐다. 주택에서 지내야 하는 노년의 삶은 더욱 늘어났지만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거주하는 노후 아파트를 개보수하는 것이 과거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재건축은 황금알 등식 이젠 안통해
10년 안에 전체 아파트 재고의 3분의1에 해당하는 270만가구가 어떠한 형태로든 재정비나 대수선이 필요한 노후주택이 된다. 주택경기가 나쁘고 사업 수익성이 떨어져 재건축 사업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노후 아파트 수는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후 아파트를 어떻게 재정비해야 할까. 리모델링이 대안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그래도 재건축 사업이 가장 비용대비 효율이 높은 방식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재건축 사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 4ㆍ1대책 발표 후 나타나는 재건축 시장의 움직임은 이처럼 사업성 없이 늘어나기만 하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교훈이 될 것 같다.
4ㆍ1대책 발표 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재건축 대상 아파트였다. 4년이 넘게 하락세를 이어왔던 이들의 가격과 거래가 4월 들어 모두 상승세로 돌아섰다. 사업 속도가 빠른 단지들은 정책효과와 시장분위기가 맞물리면서 오랜만에 훈풍을 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재건축 대상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요지의 재건축 단지들이 잇달아 시공자 선정에서 낭패를 보고 있다. 어떤 곳은 아예 응찰한 건설업체가 전무한 곳도 있다. 실제로 상위 5개 건설업체들의 재건축 사업장 수주실적은 2010년 이후 매년 절반씩 감소하고 있는데 올해는 4월 말까지 한 건도 없다. 비슷한 경제적ㆍ정책적 상황인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먼저 훈풍의 영향권에 있는 재건축 단지들의 특성은 지난 4년 동안 가격 하락폭이 컸던 단지들이다. 경기호황기에 형성됐던 가격 거품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다. 그동안의 가격 하락은 조합원들의 고통이 됐지만 사업 수익성을 개선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했다. 그 다음은 서울시의 한강변 관리계획 변경이나 4ㆍ1대책에 포함된 관리처분상의 규제완화 등 재건축 관련규제의 완화혜택을 본 지역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마지막으로 조합과 시공사, 조합원들 간의 대립과 충돌이 어느 정도 해소되거나 마무리돼 의사결정이 비교적 신속한 단지라는 것이다. 결국 호황기의 과도한 욕심이 반영된 높은 가격과 사업 억제적 규제, 사업시행자 간의 마찰이 없어야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ㆍ조합원ㆍ시공사 모두에게 재건축 사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시공사·조합 과도한 욕심 버려야
이제는 공히 재건축 사업이 곧 황금알이라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대규모 단지라면 앞 다퉈 수주에 뛰어들었던 건설업체들이 재건축 사업장의 수주를 주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합원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일반분양분에 과도한 비용을 전가하거나 사업 리스크를 확정지분제로 회피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재건축에 대한 정부의 규제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주택경기 과열로 재건축을 억제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오히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주민 자력적인 재건축 사업을 독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노후불량 주거지의 정비가 고스란히 지자체의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4ㆍ1 대책 이후 일부 단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위에 나타난 사례는 아직 암울하기만 한 주택시장에서 향후 재건축 사업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