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영생교회신도 7명 집단자살(종합)

특정종교의 신도들이 추석인 5일 오전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포월리 낙산대교 건설현장 인근에서 집단으로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경찰은 사건현장 목격자와 연고자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이들이 강원도 지역을 떠돌다 종교적인 문제로 집단 자살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타살 가능성도 배제하지않고 있어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사건발생 5일 오전 6시께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조산리 남대천 하구 낙산대교 건설현장인근에 주차중이던 서울6코 1784호 베스타 승합차에서 화재가 발생, 차안에 타고 있던 남녀 7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들은 영생교회 목사인 우종진씨(53. 중랑구 묵2동 235-91)와 우씨의 부인최순자씨(54), 우씨 둘째 아들 제홍씨(27), 신도인 이영희(52.여.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최수웅(28.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최계자(37.여.일명 최순자.경기도 평택시세교동), 박혜숙씨(여.나이 주거미상) 등이라고 속초경찰서는 밝혔다. 사건 현장을 최초로 목격한 金병천씨(42.양양군 양양읍 서문1리 3반)는 "승용차를 운전, 남대천 하구 둑으로 나가 공사현장 인근에 차량을 주차시켜 놓고 공사장까지 2백여m 거리의 둑길을 조깅하던 중 둑 옆에 앞문이 열린 승합차가 주차된 채 40-50대로 보이는 남자 1명이 차앞에서 토하고 있었고 다른 한사람은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金씨는 이어 "공사장을 돌아 승용차로 되돌아올 때 누군가가 차밖으로 나와 이불같은 것으로 승용차 뒷 유리창을 덮는 것을 봤으며 30여분후 조깅을 끝내고 남대천으로 내려가 물고기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던 중 갑자기 승합차에서 불길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金씨는 "당시 차안에서는 살려달라는 등의 아무런 외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장 사건현장의 승합차 주변은 하루종일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불길에 좌석과 지붕이 완전히 녹아 내리고 유리창이 박살난 앙상한 몰골의 차량내부에는 소방차가 쏟아부은 물이 시트 등이 타면서 발생한 재가 뒤섞인 채 고여 있었으며 자살당시 차량에 끼얹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냄새가 코를 찔렀다. 또한 쿠션 스프링만 앙상하게 남은 승합차의 뒷좌석과 중간좌석에는 이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소형 텐트 2개가 가방에 담긴채 불에 탄채 나뒹굴고 있었으며 타나남은 수건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러나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 덕분에 승합차의 4바퀴는 불길의 피해를당하지 않고 펑크도 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보존돼 있었다. 승합차 안에서는 텐트 2개외에 개봉하지 않은 국산양주 2병, 캔맥주 2개, 1.5ℓ들이 음료수 1병 등이 들어 있는 가로 60㎝, 세로 30㎝, 높이 40㎝ 크기의 아이스박스 1개가 수거됐으며 이밖에 초콜릿도 여러개 나왔다. 속초경찰서 한 형사는 "숨진 7명의 시신이 모두 몹시 심하게 타 남여 만을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였다"며 "당초에는 종교관련 사건이 아니라 최근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IMF형 일가족 자살사건으로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사건이 발생한 현장은 양양신대교에서 둑을 따라 바닷가 쪽으로 3㎞정도 떨어진 낙산대교 공사장 인접도로로 양양-속초 7번국도와는 논을 사이에두고 1㎞정도 떨어져 있으며 남대천과 접해 있어 목격자도 이들이 낚시를 온 것으로 알았을 정도로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수사 경찰은 불에 탄 승합차의 차대번호(KNHTP 362PS725431)를 통해 승합차의 소유주파악에 나서 차량소유자가 우목사의 둘째 아들 제홍씨(27.서울시 중랑구 묵2동)임을확인했다. 경찰은 이어 서울과 대전에 살고 있는 우목사의 여동생들을 찾아냈으며 이들로부터 "숨진 사람들 중 3명은 오빠 부부와 조카 제홍이며 나머지 4명은 영생교회의신자일 가능성이 크며 오빠가 '평소에도 순교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진술을확보했다. 경찰은 정확한 신원파악과 사망원인 규명을 위해 7일 오전 속초의료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도움을 얻어 시체부검을 하기로 했다. 경찰은 "불에 탄 시체가 심하게 훼손돼 육안으로는 도저히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라며 "혈액형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야 정확한 신원이 나올 수 있어 확실히 결과가 나오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특히 시체부검을 통해 목안과 폐의 그을음 검출 여부를 파악하면 이들이 모두 생존한 상태에서 불에 타 숨진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음독 등으로 숨진상태에서 소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경찰은 5일 밤 우씨의 큰 아들을 불러 사망한 우씨 가족 3명에 대한 신원확인을 실시한데 이어 6일 오후에는 나머지 사망자의 가족들을 불러 신원파악에나섰다. ▲우종진 목사 우목사는 지난 87년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영생교회를 세우고 최근까지 서울시내를 전전하며 선교활동을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우목사는 지난 82년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의 S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86년까지 강원도 태백시에서 전도사 생활을 해왔으며 87년 면목동에 영생교회라는 개척교회를설립해 목사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89년에 교회를 구의동으로 옮겨 1년동안 지냈으며 이때 영생교회 신도는 1백여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우씨는 신도가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교회주변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다시 면목동 주택가 신축건물로 교회를 옮겼다. 그러나 우씨는 교회신도가 늘어나기 시작한 구의동 교회 때부터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도 여러 신 중에 하나일 뿐이며 누구나 신이 될 수있다는 교리를 신도들에게 전파, 이때부터 신도들이 줄기 시작해 교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이때문에 우씨는 이번에 자살한 신자 6명과 함께 교회를 면목동에서 상봉동으로 옮겼으며 90년대 초 전세집을 얻어 현재의 묵2동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특히 우씨는 가족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병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논리로 위문조차 오지 않았으며 학문도 필요없다며 자녀의 대학진학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씨는 또 신도들을 데리고 1년에 한번 정도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1개월까지교회를 떠나 강원도 등지를 돌아다니며 결속력을 다진 것으로 전해졌다. ▲영생교회 영생교회는 우목사가 지난 87년 면목동에 설립한 개척교회로 그동안 구의동 등지로 옮겨다니다 90년대 초 신도들이 거의 없어지면서 재정사정으로 우목사의 전세집을 근거지로 삼아왔다. 우목사는 영생교회를 설립한 후 서울의 상봉동과 면목동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해 왔으며 교회설립 초기에는 신도들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신격화하는 우씨의 교리에 공감하지 못한 신도들이 속속 이탈, 사건발생 전까지 신도는 5일숨진 6명이 전부였다. 이들은 서울시 중랑구 묵2동에 전세방을 얻어놓고 폐쇄적인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공사장 인부나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교회운영 경비 등을 조달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으로 교회설립 초기 우목사와 함께 종교생활을 했던큰 아들과 여동생 등 가족들도 우씨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때문에 이번 사건 이전까지 영생교회에서 집단생활을 한 우씨 가족은 우씨와 아내 최순자씨(55), 둘째아들 제홍씨(28) 등 3명뿐이었다. 그러나 경기도 부천시 역곡 3동 소재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재단은 5일 영생교회 신도들의 집단소사 사건은 영생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승리신문사 金種萬사장은 "우종진 목사 등 관련자들은 승리재단의 성도로 등록돼 있지 않고 영생교는 교직에 목사라는 명칭이 없다"며 "더욱이 영생교에서 주장하는 순교는 영적인 의미의 순교로 집단자살같은 어처구니 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영*화 '네고시에이터' 무/료/시/사/회 1,000명 초대(호암아트홀) 텔콤 ☎700-9001(77번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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