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앞에선 채권단 압박·뒤론 돈 빼돌려 '해도 너무한 모럴해저드'

■ 법정관리 악용하는 기업 오너들<br>'꼬리 자르기식 지원 중단'은 예사 CP까지 발행 투자자 피해 나몰라라<br>금융당국 "인력 부족, 적발에 한계" 사법당국과 공조 기업파산제 수술 시급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일부 기업인들의 모럴해저드 창구가 된 지 오래됐지만 삼부토건 오너의 행위는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로 많이 나갔다. '법정관리 신청 전 기업어음(CP) 발행으로 투자자 골병 들이기' '꼬리 자르기식 지원 중단으로 금융회사 애먹이기' 등의 모럴해저드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곤 하던 법정관리가 급기야 대주주의 불법 주식거래에 악용되는 그림자까지 드러낸 것이다. 차제에 법정관리 자체에 대한 수술작업은 물론 기업의 회생이나 파산제도 전반에 대해 금융당국과 사법당국 간 공조를 통한 제도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비등하는 이유다. ◇법정관리 무기로 채권단 압박…뒤에서는 돈 빼돌리기=법정관리 신청 전 차명으로 소유한 주식을 은밀히 시장에 내다판 삼부토건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는 부실 기업주가 법정관리를 무기 삼아 은행 등 채권단을 어떻게 압박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울러 기업인이 뒤에서 돈을 빼돌리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작업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삼부토건은 동양건설산업과 공동으로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우리은행 등에서 총 4,270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으나 부동산 경기침체로 사업은 지진부진해지고 자금압박은 커졌다. 그러다 지난 4월12일 채권단과 대출 만기연장 등의 협상이 잘 안 풀려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조남욱 삼부 회장은 채권단과 한창 협상이 진행되기 이전인 4월1일에 이미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결정해놓고 있었다. 1조원대 자산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등을 보유한 삼부가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할 당시부터 채권단 압박용이라는 분석이 금융권에서 흘러나왔는데 이번에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삼부토건은 또 법정관리 신청 전인 3월에 727억원어치의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금감원의 이번 조사 결과 삼부가 법정관리 신청 결정을 불과 5일 앞둔 시점에도 60억원어치의 CP를 발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3월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LIG건설도 법정관리 신청 열흘 전까지도 CP를 발행해 다수의 개인투자자들에게 피멍을 안긴 바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법정관리를 이용한 기업의 도덕적 해이뿐 아니라 대주주 및 임직원의 불법 주식거래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인력 등 물리적 한계가 있어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정교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와 투자자의 과도한 희생을 야기하고 있는 현행 법정관리를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액주주 피멍 든 사이 오너는 지분 팔아 잇속 챙겨=삼부는 법정관리 신청 카드를 막판까지 활용해 최대주주이자 회사의 대표이사인 조 회장의 재산 지키기에 나섰다.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한 3일 후인 4월4일부터 이를 공식적으로 공개하기 직전인 12일까지 조 회장이 차명으로 관리해온 회사 주식 3만8,384주를 시장에 내다팔았다. 수천억원의 재산을 가진 기업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피해는 아예 눈감고 자기 잇속만 챙긴 셈이다. 금감원 조사국의 한 관계자는 "법정관리 신청 전에 차명으로 관리해온 지분을 대주주가 매각한 것은 모럴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며 "최근 법정관리 신청 상장기업이 많아 비슷한 사례가 또 있을 수 있지만 인력 부족으로 적발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법정관리제도 수술 시급=금융당국은 이미 2~3년 전부터 현행 법정관리제도에 대한 수술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관련 사항이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항상 구두 선에 머물러왔다. 사법당국과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탓이었다. 이런 사이 기업인들은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법정관리를 자기 이익을 챙기는 도구로 삼는 모럴해저드가 빈번하고 급기야 내부정보 이용이라는 기업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까지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 고위임원은 "채권단 입장에서 수천억원씩 지원한 기업인이 법정관리로 장난을 치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며 "차제에 당국이 원점에서 기업파산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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