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파이낸셜 포커스] STX서 BS사태까지… 구멍난 금융리더십

허술한 금융당국… 관료들조차 "관치가 너무 투박하다"<br>BS금융지주 회장 사퇴 종용… 행동대장만 급급 방식은 초보<br>금융계 수장 선출 과정에선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로 논란<br>기업 구조조정도 보신주의로 그룹 회생은 커녕 위기 불러

신제윤 금감위장

최수현 금감원장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위원장부터 신제윤 금융위원장까지…. 역대 금융 수장은 한결같이 시장에 대한 '영(令)'과 '질서'를 강조해왔다. 신 위원장은 임명 직후 서울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관치가 아니면 정치, 정치가 아니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라면서 '관이 없는 자리'가 가져오는 시장의 무질서를 질타하기도 했다. 관치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시장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규율이 종국에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지키고 나아가 산업 전반을 성숙시킬 수 있다는 오랜 경험칙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리더십은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최대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시장의 흐름을 보면 관치를 통한 질서가 오히려 망가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는 STX와 쌍용건설 등 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물론이고 KB금융 회장 선출 과정과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퇴진 요구 사태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매끄럽게 처리되는 것이 없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후배들의 일처리에 가타부타 말할 바는 안되지만 당국의 시장을 보는 방식이 너무 허술하다"며 "관치가 너무 투박하게 이뤄지면서 시장에 마찰만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질서 없는 관치, 여전한 정치=관치에는 필수 조건이 있다. 바로 '질서'다.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가장 강조했던 것도 바로 '질서 있는 통제'였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질서 없는 관치'가 계속되고 있다. BS금융 사태만 해도 종국에는 금감원 요구대로 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장호 BS 회장은 10일 입장 발표를 할 예정인데 물러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하지만 명분의 칼자루는 BS가 쥐게 됐다. 여론은 철저하게 감독 당국에서 떠났다. 이유는 단순하다. 당국의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역대 금융 당국 수장들은 껄끄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2인자'인 금융위 부위원장이나 금감원 부원장을 내세웠다. 과거 국민ㆍ주택은행 간 합병 등 굵직한 현안을 잡음 없이 해결했던 정건용 전 금감위 부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실상 이번에 조영제 금감원 부원장도 같은 역할을 부여 받았다. 하지만 조 부원장은 '행동 대장'으로서의 역할만 알았지 방식은 아마추어였다(전직 금감원 고위 관계자). 여론의 관심이 전혀 쏠려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난데없이 특정 언론을 통해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금감원 창설 이후 한번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장기 집권에 따른 결정적인 폐해를 찾지 못한 채 민간회사의 경영권을 침해했다는 비판만 받게 됐다. 당국의 한 관계자조차 "조 부원장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근거를 내놓든지 당사자와 사전에 합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태는 정부 고위층이 경남은행 인수를 추진해온 부산은행을 압박하고 특정인을 회장으로 낙점한 게 아니냐는 정치적 의혹으로 번지고 있고 심지어 부산은행의 최대 주주인 롯데그룹에 화살을 겨누려 한 것 아니냐는 '설 아닌 설'로 연결되는 형국이다.

KB금융 선출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실 재경부 관료 출신인 임영록 KB금융 사장은 이번 선출 과정에서 이변이 없는 한 낙점될 것으로 예상돼왔다. 일찍이 내부 출신으로 압축이 된 상황에서 다른 후보와 경쟁력에서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종 선출을 앞두고 신 위원장이 "관료도 전문성이 있으면 KB금융 회장을 할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일을 오히려 꼬이게 만들었다. KB 관계자는 "노조 문제는 회장직을 수행하면서도 두고두고 임 내정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 있다"고 말했다.


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 과정도 비슷하다. 우여곡절 끝에 '컨트롤메이커'인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이 발탁됐지만 지난해 신충식 농협은행장의 회장직 돌연 사퇴 이후 이뤄진 공모와 이번 선임 작업 모두 '투박한 관치'의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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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부재에 방향 잃는 기업 구조조정=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당국의 리더십 부재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환란 이후 구조조정이나 대우사태ㆍLG카드사태 등의 해결 과정에서 당국은 총대를 메고 사태 해결에 나섰다. 당국이 일관성 있게 문제 해결에 나서야 시장이 '복종'을 할 수 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은 당국의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장 원리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당국의 구조조정 작업은 리더십은커녕 철저하게 보신주의로 흐르고 있다. 어정쩡하게 나서면서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이 과정에서 주채권은행들은 다른 채권 금융기관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팬오션은 일관성 없는 당국과 주채권은행 속에서 기업이 비운을 맛본 케이스다. 당국은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에 회생을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산은의 면책 요구, 채권단 간 불협화음 등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나서기를 주저했다. 한 채권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는 "팔 수 있는 기회마저 채권금융기관이 빼앗았다"며 "STX팬오션과 같은 사태는 구조조정 사례에서 절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관치의 실패는 쌍용건설까지 벼랑으로 몰고 있다. 채권단이 워크아웃 개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자 당국은 슬그머니 손을 뗐다. "주채권 은행이 결국 살릴 것"이라고 강조했던 금융위 관계자들도 최근에는 "내 소관이 아니다"라며 뒤로 빠졌다. 전직 고위 관료는 "1990년대 후반 현대나 대우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당국은 통상마찰을 정교하게 피하면서 일사분란하게 대책을 내놓았다"면서 "관치가 시장의 비판에도 받아들여진 이유는 시장 참여자가 눈앞의 이해만 보고 움직일 때 시장 전체를 보면서 이끌어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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