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짝퉁'거리 현장 르포
'9 to4' 새벽까지 문전성시… 지구촌 '짝퉁과의 전쟁'불구 여전히 호황도·소매점 할것없이 "물건없어 못팔지경" … 선거 앞두고 단속주춤, 노점상 부쩍 늘어
김미희기자 iciici@sed.co.kr
“골라 골라~ 샤넬,루이비통 가방이 단돈 2만원.”
“이거 A급이에요.”
“당연하죠. 진짜랑 똑 같잖아요. 정말 싸게 파는 겁니다.”
지난 1일 저녁 9시를 갓 넘긴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사거리. 노점상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 ‘가게’를 열며 하루 영업을 시작한다. 30여분만에 빽빽이 들어선 100여 개 노점 매대들에는 루이비통, 샤넬, 구찌, 에트로 등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로 가득찬다. 흔히 말하는‘짝퉁’들이다. 상인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고, 곧 이어 ‘명품족’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금발머리 명품족들도 눈에 띄고, 왠지 시끄럽다 싶더니만 중국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최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짝퉁 핸드백을 판매한 혐의로 중국 상하이의 까르푸 매장을 법정고발하고, 프랑스 당국은 모조품 구매자에게도 벌금을 물리기로 하는 등 지구촌 곳곳에서 ‘짝퉁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매일 오후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열리는 동대문의 ‘짝퉁시장’은 아랑곳 없이 불야성이다.
동대문 짝퉁시장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해 지방의 도매업자들은 물론, 해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명소’다. 노점에서는 명품 로고가 새겨진 짝퉁 제품을 버젓이 내놓고 팔고, 대형쇼핑몰에 입점한 상가들 조차도 소위 ‘A급’ 짝퉁 상품들을 철저한 보안 속에 판매한다. 특히 동대문의 짝퉁상가들은 공장과 연계해 ‘번개 같은’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데다, 품질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A급 명품 짝퉁이 동대문에서 가장 많다는 N쇼핑몰의 경우 지하 1층과 4층에 약 10여 곳의 매장에서 모조 구찌 핸드백을 6만5,000~9만원, 루이비통 가방을 8만5,000~13만원에 판매한다. “여기서는 일단 모양만 보시고요, 제품을 주문하면 ‘좋은 것’으로 갖다 드릴께요. 15분이면 충분합니다.”
도매거래만 한다는 J쇼핑몰 지하 1층의 한 상가에서는 특A급 짝퉁 명품을 10~30만원 대에 팔고 있다. 대전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올라왔다는 이 모씨는 “노점에서는 중국산 준A급 짝퉁을 주문하고, 쇼핑몰에 입점한 상가에서는 국산 특A급 짝퉁을 구입한다”며 “동대문의 물건들이 남대문이나 이태원 보다 품질이 좋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단속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짝퉁 제조공장들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져있는데다, 노점상들은 언제든지 매대를 접고 피할 수 있기 때문. 3년째 동대문 노점에서 짝퉁상품을 팔고 있는 김 모씨는 “단속이 떠도 노점은 바로 철수할 수 있어 문제없다”며 “도매로 물건을 떼러 오는 소매상들이 많아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검찰청 형사1과 지적재산권 담당 관계자는 “명품 가방 1개 만드는 데 드는 원가는 4~5만원선이고, 특A급 짝퉁 가방의 마진은 최대 4배”라며 “요즘에는 단속을 피해 대규모 공장보다는 소규모 가내수공업 형태로 운영되고, 한시적으로 공장을 차렸다가 상품을 만들고 사라지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단속인력도 부족해 짝퉁 노점상들이 오히려 늘어난 상황이다. 동대문 시장 모조품 단속을 전담하는 중부경찰서의 김준호 경장은 “노점은 단속 해봐야 이미 공장이 철수한 뒤라 뒷북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최근에는 선거철이라 단속 인력이 줄어 짝퉁 노점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입력시간 : 2006/05/02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