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9월 25일] 계영배(戒盈杯)의 교훈

풍성함과 여유로 상징되는 추석연휴 기간에 미국에서는 대표적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세계 최강 증권사로 군림해온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됐다는 경천동지의 소식을 접했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금융시장의 냉엄한 현실 속에 그동안 쌓아온 이들 투자은행의 전통과 명성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첨단 파생상품은 마치 실타래처럼 얽히고 변형돼 도무지 그 끝을 알기 어렵다. 투자자들은 금융공학과 수학이 총동원돼 만들어진 상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투자은행의 명성과 수익률에 현혹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정확한 상품구조와 규모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체 리스크 관리나 당국의 건전성 감독은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끝없이 황금알을 낳아줄 것 같던 고도의 파생상품들이 과욕의 결과로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고 말았다. ‘계영배(戒盈杯)’라는 잔이 있다. 원래 고대 중국의 국가적 중요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방법을 비밀에 부쳐 만들었다는 이 잔은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70%가량 잔이 차면 그 이상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처음으로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후 이 잔을 조선 거상(巨商) 임상옥이 소유하게 됐고 그는 늘 계영배를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며 큰 재산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이 담겨 있어 유명 정치인이나 일부 CEO들도 곁에 두고 끝없이 생겨나는 과욕을 다스린다고 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관련 금융회사의 지나친 욕심과 이를 방관한 감독 소홀에서 초래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려되는 것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아직 배울 것이 많고 갈 길이 먼 우리 금융투자업이 이번 사태 때문에 자칫 위험산업으로 인식돼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사태가 빌미가 돼 우리 금융산업의 규제완화와 금융투자업육성정책 방향이 후퇴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형 투자은행을 적극 육성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스스로 70%만 채우는 과욕의 절제 속에 나머지 30%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 감독으로 채우는 계영배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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