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ㆍ동계올림픽 종합 5위, 월드컵 축구 4강.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스포츠 강국이다. 하지만 한국을 스포츠산업 강국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내세울 만한 스포츠 브랜드 하나 없다. 축구ㆍ야구ㆍ골프 등 세계 주요 프로무대에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면서도 그들의 가슴이나 용품에 새겨진 로고는 외산 일색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국내 스포츠산업의 연 매출액은 36조5,000억원으로 미국(220조원)의 15%에 불과하다. 일본(52조원), 독일(52조6,800억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스포츠산업은 전세계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분야다. 특히 국민건강, 삶의 질 향상이라는 가치산업으로 멀리 보면 국가존립과도 직결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신성장동력으로서 스포츠산업의 잠재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홍길표 백석대 경상학부 교수는 "산업으로서의 스포츠는 앞으로의 10년간 성장을 이끌 축"이라며 "스포츠 관련 업계도 창업 분위기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정부의 연속성 있는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간 융복합이 살길=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펴낸 체육백서에 따르면 국내 스포츠용품 제조업체는 6만9,000여개. 하지만 이 중 95% 이상이 50인 미만 종사원으로 구성됐을 정도로 매우 영세하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2006년 '나이키플러스'를 내놓았다. 신발 안쪽에 부착된 나이키플러스 센서가 아이폰이나 아이팟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연결돼 달리기 시간과 거리, 소모된 칼로리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세계에서 500만명이 이용하는 이 제품은 나이키의 러닝화 매출을 30% 이상 끌어올렸다. 정보기술(IT) 회사인 애플과의 긴밀한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스크린골프는 지난해 추정 라운드 수가 5,000만회나 됐을 만큼 도시민의 생활스포츠로 뿌리를 내렸다. 스크린골프 장비업계 1위인 골프존의 매출은 2002년 10억원에서 올해 3,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스크린골프장 운영업체들의 지난해 연 매출액은 1조7,500억원 규모에 달했다.
스포츠산업의 성장해법이 산업 간의 경계를 넘어선 융합에 있다.
스포츠는 IT와 결합될 경우 전자기기 같은 제조업은 물론 미디어ㆍ엔터테인먼트ㆍ관광 등과의 융합이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유연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스포츠산업은 스포츠 결합 이벤트의 방송중계권ㆍ스폰서십ㆍ에이전트ㆍ스태프 등 인력, 시설물 건설 등 파생되는 부가가치와 고용의 규모도 상당하다. 스포츠산업의 융복합을 위해 산업계가 앞장서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 스포츠 빅데이터 공개로 개발 유도를=체육과학연구원에서 스포츠정책을 연구하는 조운용 박사는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거기에 따르라고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시장이 자발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는 플랫폼만 만들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이키가 무서운 것은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고객들의 데이터를 고스란히 축적했다는 것이다. 그 방대한 데이터는 러닝 이외 부문의 판매전략에도 훌륭하게 활용된다"며 "스포츠 관련 업체가 영세한 우리나라는 정부가 국민의 신체ㆍ운동지수를 파악해 이 데이터를 업계에 제공함으로써 나이키플러스 같은 제품이 나오도록 유도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차원에서 이른바 건강 관련 빅데이터를 수집ㆍ축적하고 민간에 공개하면 자연스럽게 이를 활용하는 제품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파생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등장으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동시에 소비자인 국민들의 심신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어 일석이조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정부가 생애 연령대별 스포츠 활동 실태를 파악해 적정 운동량에 대한 지침을 배포했고 이는 스포츠용품 업계의 활황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규칙적인 체육활동을 하는 국내 생활체육 인구는 현재 43%다. 새 정부는 출범 5년 후의 스포츠정책 비전을 발표하면서 2018년까지 생활체육 인구를 60%로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생활체육 인구가 늘어나면 자연히 스포츠시장과 산업이 발달한다. 이를 위해 우리도 국민편의를 위해 위치기반 서비스를 활용한 체육시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필요하다.
문체부는 이번 스포츠정책 비전에 스포츠창업 지원 등을 통해 '경제를 살리는 스포츠'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스포츠산업 규모를 현재 36조원대에서 오는 2017년 53조원까지 끌어올리고 일자리 4만개를 창출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스포츠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처럼 정부의 인식변화와 지원이 필수다. 스포츠를 산업이자 국민이 향유할 서비스 분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
유진룡 문체부 장관은 최근 "앞으로 체육 분야에서 재정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사실 역대 새 정부 출범 초기의 의례적인 '큰소리'는 늘 있어왔다. 문제는 그 이후다. 얼마 안 있어 유야무야되고는 했다. 관계부처와의 긴밀한 조율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체육 분야는 이번에도 생색내기나 가장 편리한 분야로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