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10월 30일] 경제위기의 학습효과

온 나라가 금융위기의 책임공방에 함몰돼 있는 듯하다. 불가항력처럼 느껴지는 재앙이 닥치면 처음에는 모두 불안감에 사로잡혀 안절부절못하다가 일정단계를 넘어서면 희생양을 찾아 사정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속성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몇몇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정치권ㆍ전문가집단ㆍ언론 등 각계로부터 거친 비난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경질론까지 나오고 있다. 재앙이 워낙 큰데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정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흠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 모두 ‘큰 흐름의 노예” 더구나 경제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살리겠다고 약속한 정부이기 때문에 실망과 비난의 강도는 더 클지도 모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폭발로 치닫는 와중에서 물가와 같은 덜 중요한 일에 열중한 것은 글로벌 경제에 운명이 달려있는 우리 경제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고 보면 쉬운 법이다. 결과를 기점으로 과정을 거슬러올라가면서 하나하나 잘못을 꼬집어내 비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령 유가가 뛰어 물가가 치솟더라도 닥쳐올 금융위기에 대비해 달러를 풀지 말았어야 했다는 식의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흔히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경제정책도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정치나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 지금 환란의 악몽을 떠올릴 정도로 환율이 요동치는 근본원인은 외환보유액의 충분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 수입액의 3개월치 정도에 불과한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고, 그것도 그냥 금고에 넣어두는 것은 비경제적이므로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중국이나 일본처럼 적정수준 따위는 따지지 말고 외환보유액을 무조건 쌓아야 된다는 주장을 펴면 경제를 모르는 바보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고 곧 200달러로 치솟는다는 일부 전망에 전문가들조차 덩달아 춤을 추며 위기감을 키우고 수입물가 때문에 국민의 고통이 커진다는 여론이 지배적일 때 과연 물가를 외면하고 닥쳐올 통화위기에 대비해 외화보유액을 늘리는 정책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이렇게 보면 경제문제에 관한 한 그때그때의 ‘큰 흐름의 노예’라는 공통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 든다.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을 따지고 호통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때 나는 무슨 주장을 했나 스스로 되돌아보는 자성도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 능력의 문제인지 제도나 시스템 문제인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조기경보가 안 울리는 이유 부분적으로 잘못된 정책대응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붕괴라는 점에서 충격과 고통을 완전히 비켜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불과 10여년 전 사상 최대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혹독한 환란을 겪었으면 충격이 다른 나라들보다 적어야 하는데 더 큰 혼란과 충격을 겪고 있다는 데 있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경제 펀더멘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중국은 물론 말레이시아나 태국과 같은 나라들보다도 국가부도위험이 높은 나라로 꼽히고 있다. 외국인들이 잘못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글로벌화되지 않은 정책마인드와 허술한 제도적 장치가 불신의 뿌리일 수도 있다. 월가와 서울이 사실상 하나의 시장인데도 애초에 이번 사태를 태평양 건너 먼 나라 문제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봐 넘기고 국제금융담당 부서들은 여전히 한직인 나라에 신뢰가 생기기는 어렵다. 외환위기 이후 그토록 떠들던 조기경보는 왜 한번도 울리지 않았는지부터 점검하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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