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反美 기치 남미 경제권 급속 재편

■ 남미 '자원민족주의' 확산<br>"에너지사업 국부만 유출" 판단 국유화 도미노<br>좌파동맹에 페루등 동참태세…친미권과 양분

베네수엘라에 이은 볼리비아의 에너지 자원 국유화 선언으로 남미의 자원 민족주의가 중동 및 아프리카 산유국의 정정불안과 함께 에너지시장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추가됐다. 이들 좌파 성향의 남미 국가들은 반미(反美)를 기치로 내걸고 에너지산업을 포함한 자체 경제동맹체 구축을 추진, 미국과 더욱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앞서 1ㆍ2차 오일쇼크가 미국 등 서방국가와 중동 산유국의 대립 아래 촉발됐다는 점에서 이번 남미발(發) 에너지 자원 국유화 도미노가 국제 에너지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볼리비아, 에너지 자원 국유화 선언=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자원 국유화를 발표하면서 “외국 회사의 약탈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국내 가스전에서 직접 낭독한 포고문은 볼리비아 정부가 자국 에너지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회복하고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도록 명시했다. 이번 선언은 대형 천연가스 지대 2곳의 지분 82%를 볼리비아 정부가 소유, 외국 기업을 ‘단순 하청회사’로 밀어냈다. 이는 지분의 50% 이상을 국가가 소유한다는 베네수엘라의 신규 에너지 합작투자 조건보다도 훨씬 강도 높은 것이다. 특히 모랄레스는 저항하는 외국 세력에 맞서 볼리비아 내 ‘애국자’들이 총궐기해야 한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그는 6개월 안에 새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외국 회사는 ‘축출’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번 조치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중남미를 휩쓴 지난 90년대 대부분 민영화한 볼리비아 에너지사업이 국부의 외부 유출만 초래하고 정작 국민에게는 큰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 결과만 가져왔다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남미 에너지 민족주의 확산 통해 경제동맹체제 재편=이번 볼리비아 자원 국유화 선언을 기폭제로 현재의 남미권 경제동맹이 급속히 재편될 전망이다. 미국의 맹방 콜롬비아, 자유무역 기조를 강조하는 칠레 등을 축으로 한 친미권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좌파 경제동맹권으로 급속히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틀 전 모랄레스 대통령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지도자,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만나 무역협정을 체결하며 이른바 남미권 ‘좌파 3각 동맹’을 강화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미 안데스공동체 탈퇴를 선언했고 볼리비아 역시 미국 주도의 교역자유화 움직임이 계속되는 한 안데스공동체에 머무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안데스공동체의 일원인 콜롬비아와 페루가 미국과 맺은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체결에 반대하며 FTAA에 맞선 새로운 자유무역지대 ‘미주(美洲)를 위한 볼리바르의 대안(ALBA)’ 결성 의사를 확고히 밝힌 것이다. 페루도 지난달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한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최종 당선될 경우 이 좌파 동맹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콰도르 의회도 앞서 국제 원유시장 가격에 연동해 자국 정부에 수익의 50%를 보장해야 한다는 에너지 개혁 법안을 가결시켰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주축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또한 베네수엘라의 정회원국 가입으로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와 브라질ㆍ아르헨티나가 건설을 합의한 8,000㎞ 가스관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 소재 리서치그룹인 피맷의 앤토인 할프 에너지분석가는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공격적 자원민족주의가 라틴아메리카로 퍼져가고 있다”며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유가 불확실성 증폭으로 에너지시장 불안감 키워=남미가 에너지를 매개로 반미적인 경제동맹을 구축하면서 유가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남미 국가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과거 미국 일변도의 단극체제에서는 미국 외의 자본투자자 및 에너지 구입처를 확보할 수 없었으나 중국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올초 베이징에서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만나 볼리비아 내 가스전 개발에 상호 협력하기로 하는 등 지난 2004년 이후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미 국가들을 잇따라 방문하거나 중국으로 초청, 에너지 및 경제협력 협정을 맺은 것은 이들 남미 국가들에는 숨쉴 곳을 마련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중국을 지렛대로 한 남미의 미국 견제 바람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국제유가는 3월 말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 국유화 조치로 한바탕 요동을 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번 볼리비아 사태도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남미 국가들 사이에 에너지 국유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이번 볼리비아 사태가 국제유가시장에 마지막 악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1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가 73.70달러로 전일에 비해 1.82달러(2.5%)나 급등한 것도 이란과 함께 남미의 불확실성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ㆍ태평양담당 완다 청 부국장은 “최근의 나이지리아나 이란 ㆍ이라크 등 정정불안과 더해져 볼리비아 사태가 유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남미 국가들의 에너지산업 국유화가 진행될수록 공급불안으로 인한 유가상승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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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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